2018/8/14

 

많은 부분에서 굉장히 공감하며 읽었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들이 부자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바라보고, 웃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요령과 그에 필요한 신중함도 가졌을 것이다. 자신의 부를 잊고 과시하지 않을 줄도 알았을 것이다. 으스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풍요로움을 호흡했을 것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강렬했을 것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빈둥거리고, 고르며 음미하기를 즐겼을 것이다. 삶을 누렸을 것이다. 삶은 하나의 예술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가난하지만 않을 뿐 부를 갈망하는 가진 것 없는 젊은 커플에게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은 없을 듯했다. 그들은 수준에 맞는 정도로만 갖고 있었다. 이미 공간과 빛, 고요함을 꿈꾸게 되었는데, 일자리를 잃은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파산까지는 아니라도 최악의 상황일 만큼 궁핍한 것이었다. 비좁은 아파트, 날마다 똑같은 식사, 궁색한 휴가로 만족해야 했다. 그들의 경제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이고 달리 기대할 게 없었다. 하지만 바로 곁 주변에, 늘 걸어 다니는 거리를 따라 죽 늘어선 골동품 가게, 식료품점, 지물포에는 매력적이지만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다.(22-23p)

 

 

이 매력은 결코 질리는 법이 없어서 늘 처음처럼 새롭게 음미하고는 했지만, 몇 달 동안 무사태평하게 즐거움을 누리고 나자 집의 결점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남루한 방에서 잠만 자고, 일어나면 늘 카페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그들이기에 자고 먹고 읽고 수다 떨고 씻는 매일의 기본적인 활동에 각각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하지만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 명백한 부재를 참을 수 없었다. 좋은 동네라는 것, 무프타르 가나 자르댕 데 플랑트 가가 지척에 있고 주위가 조용하다는 것, 그들만이 가진 낮은 천장의 매력, 자태가 멋진 나무들, 사계절 내내 감상할 수 있는 정원을 떠올리며 최대한 위안을 삼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한데 뒤죽박죽 섞인 물건들, 가구, 책, 접시, 잡다한 서류, 빈 병들 틈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소모전에서 결코 그들은 승자로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

어떤 날에는 비좁은 공간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두 방을 넓히고, 벽을 부수고 복도와 벽장을 들쑤시고 물건들을 들어내고 드레스룸 모양을 그려보고 옆집을 터서 연결해 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허사였다. 번번이 이제는 그들의 운명이 되어버린 원래의 35제곱미터로 되돌아오고 말았다.(24-25p)

 

 

차츰 부자가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자였던 것처럼 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안락한 가운데 미를 추구하며 살고 싶었다. 그들은 목청을 높이며 감탄하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부자가 아니라는 제일 확실한 증거였다. 몸에 배서 너무나 당연한 것, 몸의 행복에 따르기 마련인, 드러나지 않고 내재하는 진정한 즐거움이 그들에게 부족했다. 그들의 즐거움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치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돈을 전제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의 기호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삶을 사랑하기에 앞서 부를 사랑했다.(28p)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모든 것이 감미롭게 천천히 흘러갔다. 강렬한 기쁨이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것들을 고양시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조화로운 상태가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사소한 불협화음, 대수롭지 않은 주저의 순간들, 무례한 태도만으로도 그들의 행복은 무너져 내렸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일종의 계약, 그들이 대가를 지불했던 무엇, 불안정하고 딱한 무엇인가, 잠깐의 행복한 순간이 사라지면서 그들은 더 위험하고 더 불확실해 보이는 일상과 삶으로 내동댕이쳐졌다.(59p)

 

 

근무 조건은 상상이상이었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신문을 읽고, 맥주나 커피를 마시러 자주 내려갔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었다. 마감 날짜를 끌면서 제대로 작성된 확실한 고용계약과 빠른 승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키워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꿈은 여지없이 깨졌다. 매일 저녁, 만원인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은 불만투성이였다. 씻지도 않고 멍한 상태로 아무렇게나 간이침대에 쓰러졌다. 오직 긴 주말과 빈둥거릴 수 있는 날, 여유로운 아침만을 꿈꾸게 되었다.(61p)

 

 

일단 돈을 벌겠다고 선택한 사람들, 부자가 되고 난 이후로 자신들의 진짜 계획을 미뤄둔 사람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누리기만을 원하는 사람들, 삶이란 최대한의 자유로서 행복의 추구와 욕망, 본능의 절대적 충족, 세상의 무한한 부를 당장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ㅡ제롬과 실비는 이런 종류의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ㅡ이런 이들은 늘 불행하다. 사실 이런 딜레마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가령 너무 가난해서 조금 더 잘 먹고, 조금 나은 집에 살면서 조금 적게 일하는 것 이상을 바라지 않거나, 혹은 처음부터 아주 부자여서 이런 괴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 같은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자, 학업을 마치고 명예롭게 국방의 의무를 완수한 한 청년이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무일푼의 스물다섯이 되었다고 하자. 하지만 빠른 계산으로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돈을 가진 것처럼 상상하게 된다. 즉, 앞으로 아파트며 시골의 별장, 자동차, 하이파이 스테레오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장밋빛 약속은 늘 기다려야 한다. 이에 대해 잘 생각해 보면, 이런 소유는 속성상, 결혼, 아이, 가치관의 변화, 사회적 태도 및 행동의 변화와 맞물려 같은 박자로 진행된다. 요컨대 이 젊은이는 자리를 잡을 것이고, 그러기까지 족히 15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전망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누구도 원망 없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회 초년병인 이 젊은이는 말할 것이다. 뭐라고, 꽃이 만발한 들판을 거니는 대신 창 딸린 사무실 책상 뒤에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내라고? 승진 발표 전날 희망에 들떠 가슴 졸이라고? 계산적이 되어 술책을 부리고, 화를 꾹 참아내라고? 시를 꿈꾸고, 야간 열차와 따뜻한 모래사장을 상상하는 내가? 젊은이는 마음을 달래며 할부 판매의 덫에 걸려든다. 그 이후로 그는 제대로 걸려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에게는 인내로 무장하는 일만 남는다. 아, 마침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이면, 청년은 더 이상 젊지 않고 불행에 가득 차서, 인생이 저 멀리 사라져버렸음을 느낄 것이다. 그에게 삶은 목적이 아닌 고생일 뿐이다. 느린 승진이 가르쳐준 값진 경험으로, 몸을 사릴 만큼 현명해지고 신중해져서 더 이상 이러저러한 발언을 삼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는 것은 마흔 줄에 들어섰다는 것과 노동에 할애하지 않는 알량한 시간을 채워줄 집과 별장, 아이들 교육뿐이리라·····. (63-64p)

 

 

돈을 아끼는 일은 종종 그들을 완전히 지치게 했다. 끊임없이 그에 대해 생각했다. 애정 생활조차 대개 경제 상태에 달려 있었다. 조금만 더 돈이 있고, 조금만 더 상황이 나으면 함께하는 행복이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생각뿐이었다. 어떤 억압도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의 취향과 환상, 상상과 욕구는 둘의 자유로운 기질 중 완전히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은 특별한 경우였다. 대개는 싸우는 때가 더 많았다. 돈이 부족하기 시작하면 서로에게 날카로워졌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신경을 곤두세워서, 가령 허투루 쓴 100프랑이나 양말 한 켤레, 내버려 둔 설거지 따위로 싸웠다. 그렇게 되면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얼굴을 맞대고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각자 만든 식사를 해치웠다. 소파 양 끝에 등을 반쯤 돌린 채 앉았다. 어느 편에서건 냉전을 성공적으로 이어갔다. 그들 사이에 돈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벽이었다. 매번 부딪히게 되는 일종의 범퍼 같았다. 가난보다 더 끔찍한 것은 궁색함, 옹졸함, 얄팍함이었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기적이나 사상누각에 세운 어리석은 꿈 외에 다른 출구가 없어 보였다. 미래 없는 꽉 막힌 삶으로 암울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질식할 것 같았다. 침몰하는 느낌이었다. 분명, 새로 나온 책이나 영화감독, 전쟁과 같은 다른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진정한 대화는 돈과 안락함, 행복이라는 주제에서 맴도는 듯했다. 그러면 목소리 톤은 높아지고, 긴장이 고조되어 갔다. 서로 동시에 말을 했다. 그들 안에 있던 불가능한 일과 도달할 수 없는 것들, 비참한 것들을 곱씹었다. 발끈했다. 너무 같은 생각에 매달렸다. 속으로 서로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휴가와 여행, 아파트 계획을 세우다가도 성질을 부리며 집어치웠다. 그들의 실제 삶이 현실에서는 마치 존재하지 않거나 허물어질 것 같았다.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불만의 표시였다. 삶을 원망하고, 때로는 유치하게 서로를 원망했다. 중단한 학업에 대해 생각하고, 내키지 않는 휴가와 별 볼 일 없는 인생, 뒤주박죽인 아파트, 불가능한 꿈에 대해 생각했다.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저분한 데다가 아무렇게나 입고,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표정도 사나웠다.(67-68p)

 

 

긴박하게 돌아가는 사태에서 오는 압박감 때문에 그들 역시 정치적 견해를 밝혀야 했다. 물론 그들의 참여는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정치의식, 정치의식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있는 한에서, 어느 정도 색깔이 분명하고 다양한 의견의 걸러지지 않은 총체라기보다는 계획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알제리 문제의 이쪽과 저쪽 양편을 들고, 현실적이기보다는 이상적이었으며, 그들 자신도 유감스러워하며 인정하는 것처럼, 계획적인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평범한 토론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지역에서 막 조직되기 시작한 반파시스트 위원회에 가입했다. 어떤 때는 새벽 5시면 일어나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시민들에게 깨어 있을 것을 촉구하고,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과 그들의 공모를 비난하며, 느슨해진 공격을 규탄하고, 무고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벽보를 붙이러 다녔다. 집집이 탄원서를 돌리고, 위협에 시달리는 집들의 보초를 서너 차례 서기도 했다.(74p)

 

 

그러나 우정 역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저녁나절, 비좁은 답답한 방에 모인 커플들이 사나운 눈길로 언성을 높이며 충돌하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결국 자신들의 공들여 만들어낸 이토록 아름다운 우정,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의례적 어휘들, 친밀한 우스갯소리, 공통의 세계, 공통의 언어, 공통의 몸짓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쪼그라든 세계, 맥 빠진 세계는 아무 비전이 없었다. 그들의 삶은 정복과 거리가 멀었다. 삶은 부서지고 흩어져 갔다. 자신들이 얼마나 매너리즘에 빠져 무력하게 되었는지 깨달은 것도 이쯤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공허함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다 같이 권태로움에 빠져들었다. 오랫동안 말장난과 술을 즐기고 숲 속에서의 산책이나 성대한 식사, 영화와 계획들에 관한 긴 토론, 그리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모험과 삶, 진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가볍고, 시작도 미래도 없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제스처일 뿐이었다. 수도 없이 되풀이하는 말과 손이 닳도록 하는 악수, 이 같은 의례적인 행동들이 이제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80p)

 

 

스팍스를, 우울한 거리를, 그 무의 상태를 탈출하고 싶었다. 파노라마 같은 전경과 지평선, 폐허에서 무엇인가 깜짝 놀라게 홀릴 만한 것, 이미지를 반전시킬 만한 열기로 가득한 경이로움을 찾고 싶었다. 궁전과 사원, 극장의 잔해, 혹은 뾰족한 봉우리 높이에서 초록 오아시스를 발견할 때나 긴 백사장이 이쪽에서 수평선 저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펼쳐지는 광경을 만날 때면 그들의 탐험이 보상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대개는 스팍스로부터 수십,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똑같이 음울한 거리와 사람들로 들끓는 수수께끼 같은 시장, 똑같은 석호와 추레한 야자수, 다를 바 없는 척박함을 발견할 뿐이었다.(120p)

 

 

 

ㅡ 조르주 페렉, <사물들> 中,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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