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3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충분한 사례의 인용으로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불안의 원인이야 빤하기 때문에 보통이 제시하는 불안의 이유보다는 해법을 더 흥미롭게 읽었다. 당연하게도 이 책을 통해 불안에 대한 대단한 해답을 얻었다기보다는 ‘그래,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볼 수도 있지.’ 정도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살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겠냐마는 그래도 책을 조금이나마 읽어보니 드는 생각은 단 한권으로 대단한 인생의 깨우침을 주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포장된 책이라면 사이비일 가능성이 농후하며 당장이라도 멀리하는 게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나 책에서 뭔가 대단한 해결책을 찾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생의 해답을 책에서 찾으려는 사람들만큼 한갓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책을 많이 읽는다고 인생의 답을 얻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면 소설가나 문학평론가의 삶을 최고로 쳐야할 것이다. 실상은 그런가?
덧. 166p는 너무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 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 해도 우리 기분은 시커멓게 멍들어버린다. 누가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주면 갑자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환희에 젖는다.(22p)
우리가 가진 것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할 수도 없고, 중세 조상의 생활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도 없다.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가 놀라운 번영을 이룩했다고 강조하는 소리를 들어봤자 전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오직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또는 그보다 약간 더 가졌을 때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57p)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80~81p)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158p)
이렇게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을 따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166p)
혼자 사는 사람을 두고 사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것은 밤에 봉디 숲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 산책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167p)
비극 작품은 재앙을 피하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재앙을 만난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끼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따라서 극장을 나설 때면 쓰러지고 실패한 사람들을 우월한 태도로 대하기가 어려워진다.(206p)
ㅡ 알랭 드 보통, <불안> 中, 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