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앤드루 포터, <어떤 날들> 中, 문학동네

mediokrity 2016. 7. 5. 16:04

2016/6/22

 

엘슨 자신이 건축가라는 사실, 두 사람이 클라우디오 실베스트린이나 빈센트 반 뒤센이나 소투 드 모라의 작품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초반의 끌림에 다소간 작용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엘슨은 의문이 든다. 그 끌림은 이제 어떻게 변했나? 하루를 끝내며 갖는 별 의미 없는 몇 시간. 술 몇 잔 또는 영화. 대부분은 섹스. 이젠 그마저도 의례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막 사귀기 시작했던 얼마간은ㅡ이게 정말 사귀고 있는 게 맞는다면ㅡ둘이 함께 로나 친구들의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 시절 그랬던 것처럼, 모두들 술에 취해 모여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인 이들 대부분이 그보다 어렸고 몇몇은 자식뻘이었음에도 그는 그런 자리가 즐거웠다. 깜빡이는 촛불과 벽에 어룽거리는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막연한 흥미, 아니 어쩌면 질투 같은 것을 느끼며 신중하게 거리를 두고 대화를 듣는 것이 좋았다. 그런 식의 신념을 타인과 공유해본 게 얼마 만이었던가? 나중에 그는 심지어 담배까지 다시 피우기 시작하여, 저녁식사 후 담배를 피우러 마당으로 나가는 작은 무리에 합류했다. 그리고 거기 현관의 전등 밑, 또는 정원의 그림자 속에 서서 로나 쪽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으면 그녀도 항상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때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10~11p)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며 그는 생각한다. 일 년 전만 해도 삶이 얼마나 달랐던가, 모든 것이 얼마나 달랐던가. 졸업까지 겨우 몇 달을 남겨둔 그때는 창창한 앞날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명문대학의 학위, 자신을 사랑해주던 남자친구, 아직은 기능을 하고 있던 가족, 행복하게 대학을 다니던 여동생. 그런데 열두 달이 지난 지금 무엇이 남아 있나?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요리를 배우겠다며 한국으로 떠난 마코스는 처음엔 잠시 떨어져 있는 거라더니 몇 주후 완전히 헤어지자고 했다. 클로이는 대학에서 퇴학을 당했다. 부모는 이혼했다. 그리고 대학의 학위는 생각했던 만큼의 가치가 없었다. 카페 브라질에서 시급 육 달러를 받고 일하는 것은 결코 그가 생각한 전도유망한 삶은 아니었다.(90~91p)

 

 

ㅡ 앤드루 포터, <어떤 날들>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