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中, 이마고

mediokrity 2016. 7. 7. 09:50

2016/7/4

 

우리는 도대체 그가 어떤 기분으로 사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체격도 좋고 건강한데다가 일종의 동물적인 강인함과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무기력하고 활발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게다가 누구나 느끼듯이 매사에 무관심했다. 옆에서 보더라도 ‘어딘가 모자라는 데가 있다’고 느껴졌지만, 본인이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에는 ‘무관심’했다.(78~79P)

 

더 나아가 이러한 임상례에서는 심각한 역행성 기억상실이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내 동료인 레온 프로타스 박사가 최근 접한 다음과 같은 병례도 있다. 아주 지적이고 능력 있는 남성이 몇 시간 동안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에게 아내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30년에 걸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잃어버린 꼴이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서너 시간 만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곧 회복되고 더구나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고는 해도 그것은 생각할수록 끔찍한 이야기이다. 풍요롭게 살고 많은 일을 했으며 또한 온갖 추억이 서린 30년의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말살되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무서운 증상에 빠졌다는 것을 타인만 알고 당사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본인은 건망증에 걸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아무런 불안도 느끼지 못한 채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하루가 아니라(보통 알코올에 의한 의식상실은 하루 정도이지만)생애의 절반가량을 잃어버리고 그러한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낯설고 기분 나쁜 공포를 안겨준다.

나이가 들면 중풍이나 노쇠, 뇌 손상 등으로 그때까지의 생활 즉 고도의 정상생활이 예상치 않게 빨리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는다 해도 자신이 인생을 살아왔고 자신의 등 뒤에 과거가 있다는 기억은 남으며,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뇌를 다치기 전 또는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는 힘껏 노력하면서 살았다.’라고. ‘인생을 살았다’라는 의식은 인간에게 때로 위안을 주기도 하고 때로 쓰디쓴 회한을 주기도 하지만, 역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이러한 의식조차 없어진다. 부뉴엘이 말한 ‘일체의 기억상실, 전 생애를 지워버리는 최후의 상실’은 말기 치매증에서라면 아마 틀림없이 일어날 것이다.(87~88p)

 

그러나 우리는 신경기능과 신경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복잡한,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사고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하고 여긴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사고는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때때로 기질적인 병의 개입으로 변화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때는 생리학적·신경학적인 상관관계를 고려해서 인생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245p)

 

강제회상은 편두통과 간질이 발작했을 때 그리고 최면 상태에 빠졌을 때, 나아가 정신병에 걸렸을 경우 등에 일어난다. 대개는 전에도 언젠가 보았던 장면이라는 느낌이 들며, 잭슨식으로 말하면 의식의 중복이 일어난다. 그것은 특별한 말, 음, 장면, 특히 냄새 등과 같이 강렬한 기억항진성 자극을 받으면 그다지 극적이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일어난다.(284p)

 

결함이 있다고 여긴 부분의 교정에 있는 힘을 모두 쏟아붓고 때로는 잔혹할 정도의 작업을 부과했지만, 결과는 허사였다. 나는 이런 방법이 적절한 치료법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내게 이 점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사람이 리베커였다. 우리는 소위 ‘결함학’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서 ‘이야기학’ 쪽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야기학’이야말로 지금까지 무시되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구체성의 과학’인 것이다.(339~340p)

 

하지만 이러한 연구야 어찌되었든 간에, 현실은 그보다 훨씬 불가사의하고 복잡하며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가 없다.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는 형식적인 테스트나 흔히 보는 <심층취재 60분> 따위의 인터뷰 프로그램으로는 진실의 일단을 엿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연구나 텔레비전 방송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것들은 그런대로 조리가 서 있고 때로는 많은 내용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참고가 되기도 한다. 다만 그러한 노력들은 밖에서도 잘 보이므로 접근이 손쉬운 ‘표면’만을 다루고 있을 뿐 심층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심층 아래의 좀 더 깊은 곳에 대해서는 언급은커녕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는 결점이 있는 것이다.(361p)

 

 

덧. 다른 걸 다 떠나서 번역이 정말로 거지같다. 앞으로 조석현은 피하는 걸로.

 

 

ㅡ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中, 이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