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 상> 中, 범우사

mediokrity 2016. 7. 23. 19:21

2016/7/23

 

 

나는 인류를 사랑하지만 나 자신에게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인류 전체를 사랑하면 할수록 개개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 때문이다. 공상 속에서는 곧잘 인류에의 봉사에 대해 열렬한 생각을 품기도 하고 만일 어떤 기회에 갑자기 그럴 필요가 생긴다면 인류를 위해 정말 십자가라도 젊어질 듯한 심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어떤 사람하고든지 단 이틀도 한방에서 같이 지낼 수가 없다. 이건 실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누구든지 내 옆으로 다가오기만 하면 곧 그 개성이 나의 자존심과 자유를 압박한다. 그래서 나는 단 하루 동안만 함께 있으면 상대방이 아무리 훌륭한 인간일지라도 곧 그에게 증오를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은 식사를 너무 오래 한다고 해서, 또 어떤 사람은 감기에 걸려 연방 코를 풀고 있다고 해서 증오를 느낀다. 즉 나는 어떤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곧 그의 적이 되어 버린다. 그 대신에 개개의 인간에 대한 증오가 심하면 심할수록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더욱더 열렬해진다.’(94p)

 

지금처럼 유형에 처하여 징역살이를 시키는 그런 방법으로는, 전에는 거기다 태형까지 있었습니다만, 결코 아무도 교화시킬 수 없소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거의 어떤 범죄자에게도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범죄의 수를 줄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갈수록 그 수를 더 증가시킬 뿐이외다. 여기에 대해서는 당신도 아마 동감이리라 믿소. 그래서 결국 이런 방법으로는 사회는 전혀 보호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그도 그럴 것이 유해로운 인간이 기계적으로 격리되어 눈에 띄지 않는 먼 곳으로 추방된다 하더라도 곧 그 대신에 다른 범죄자가 하나 둘 나타나게 마련이니까요.(105p)

 

언젠가 오래 전에 어째서 당신은 아무개를 그렇게 증오하시오?’라는 질문을 받던 일이 문득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때 그는 어릿광대 특유의 파렴치한 감정에 지배되어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건 이런 이유에서지요. 그 사람은 사실 나한테 아무것도 언짢게 한 거라곤 없어요. 그 대신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비열한 짓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짓을 하자마자 곧 그 사람이 미워지더군요.’(141p)

 

당신이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은 드미트리뿐입니다. 제발 이점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형의 모욕이 심하면 심할수록 당신의 사랑은 더욱 뜨거워질 겁니다. 이게 바로 당신 자신의 특징이니까요. 당신은 지금 그대로의 형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을 모욕하는 그 형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만일 형의 행실이 좋아진다면, 당신은 곧 사랑이 식어 형을 버리고 말 테죠. 당신에게 형이 필요한 것은, 당신이 항상 자신의 정조의 미덕을 염두에 두고 형의 불성실을 책망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가 당신의 오만한 자존심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많은 굴욕과 자기 비하가 따르겠지요. 그러나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자존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313p)

 

나는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해 두지만 다수의 인간에겐 일종의 특이한 성질이 있는데, 그것은 어린애를 학대하는 취미야. 그것도 상대가 어린애에 국한되어 있거든. 이렇게 잔인한 가해자들도 다른 모든 인간들에 대해서는 박애심에 넘친 교양 있는 유럽 사람과 같은 얼굴을 하고 더없이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학대하는 일만은 무척 좋아해서 그런 의미에선 아이들 자체를 사랑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 즉 아이들의 무방비 상태가 이런 가해자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거야. 아무데도 갈 곳 없는, 누구한테도 의지할 데가 없는 조그만 어린애들의 천사처럼 순진한 마음, 이것이 폭군의 더러운 피를 끓게 하는 거지. 물론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야수가 숨어 있어. 걸핏하면 성을 내는 야수, 희생당한 피해자의 울부짖음에 정욕적인 흥분을 느끼는 야수, 사슬에서 풀려나 멋대로 날뛰는 야수, 음탕한 생활로 해서 풍병이니 간장병이니 하는 병에 걸린 야수, 이러한 야수들이지. 그래서 그 다섯 살 먹은 가엾은 계집애를 그 교양 있는 부모는 온갖 방법으로 고문한 거야. 무엇 때문인지 자기들도 모르면서 그저 쥐어박고 때리고 발길로 차고 하여 계집애는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버렸어. 그러나 그 부모들은 그것도 나중에는 싫증이 나서 교묘한 기교를 부리게 되었지.(395p)

 

바로 그거야. 하지만이 문제지하고 이반은 소리쳤다. “이것 봐. 수도사님, 이 세상에는 어리석은 것이 너무 많이 필요해. 이 세상은 어리석은 것을 발판으로 서 있기 때문에, 그것이 없다면 아마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우리는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니까!”

그럼 형님은 무엇을 알고 계시죠?”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헛소리라도 하고 있는 듯이 이반은 말을 이었다. “이젠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아. 나는 사실에만 머물고 싶어. 벌써 오래 전부터 이해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무언가를 이해하려들면 곧 사실을 왜곡하게 되거든. 그래서 나는 사실에만 머물기로 결심한거야.”(398p)

 

대심문관 파트 전문(404~434p)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 상> , 범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