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이석원, <보통의 존재> 中, 달

mediokrity 2016. 8. 18. 22:20

2016/8/13

 

 

많은 면에서 닭살 돋기도 하고, 그만 덮을까 싶다가도 몇몇 반짝이는 생각들과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서 다 읽었다. 요즘 읽는 책들을 떠올려보니 문장의 표현방식이 작가마다 상이하나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다 나의 편협한 독서와 책이 달라지거나 같은 책을 1년이 지나 다시 읽는 경우에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는 변함없는 나 때문이다. 책에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것이라는 한갓된 생각은 버렸지만 남는 게 이렇게나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책을 읽고 귀찮다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관련된 단상이라도 기록해둬야겠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만약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다면 나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몸, 내 키, 내 머리와 재능, 우리집, 내 나라, 그 어떤 것도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겁니다. 뿐입니까. 나의 성별 또한 내가 택한 것이 아니며 나의 이웃, 나의 가족, 친척, 친구 등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고른 것은 없죠. 인생이라는 게임이 왜 이렇게 모순되고 불공평한지 38년을 살아왔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뿐.

그러나 그 불공평함이 결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면, 게임의 승부는 누가 하루라도 더 빨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왜 이럴까,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저처럼 많이 한 사람들은 승부에서 꽤나 뒤처진 셈이 되겠지요.(98~99p)

 

 

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이 되었을 때, 상상하던 만큼의 감흥을 얻었던 적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중요한 건 이루어낸 로망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꿈을 품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268p)

 

 

누가 그런다. 내가 마음을 열면 상대는 항상 달아나더라고. 난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세상이 문제일까, 당신이 문제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여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내가 늘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 사람들이 늘 내게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모두 내 탓이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317p)

 

 

 

이석원, <보통의 존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