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내소설

ㅡ 은희경, <중국식 룰렛> 中, 창비

mediokrity 2016. 8. 25. 14:35

2016/8/24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재능과 행운과 친화력을 질투했고 그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품었다.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밖에 물러나 있기를 자청한 것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패배자가 되기 두려웠던 것이다. 전략적이지 못했을 뿐 타협도 했다. 힘있는 자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애썼고 명백한 오류임을 알면서도 그들이 주도하는 방향에 따랐다. 싸움이 벌어질 때는 아무 입장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중간자의 이득을 취했다. 경쟁이 될 만한 상대에게서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예민했고, 그에 대한 험담이 나오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그 오해를 부추겼다.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는 충분히 이기적으로 굴었다. 불안해서 비겁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거만하거나 초탈한 척했다. 수긍한 게 아니라 회피한 것이었다. 자기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논리도 익혀갔다. 그 논리란 권위를 추종하고 인기를 탐내면서 아닌 척 자신을 기만하는 기술이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가 논문을 빨리 끝내지 못한 것 역시 완벽주의자여서라거나 학문 욕심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대 이하의 결과일까봐 두려웠고, 모자란 실력이 탄로나는 상상만으로도 악몽에 시달렸다. 의미없이 책장을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책들이, 그 무너짐이, 그가 허세에 찬 그 인생을 얼마나 위태로운 마음으로 지키려 애써왔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162~163p)

 

 

나쁜 뉴스를 보고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면 남의 행운 역시 부러워해서는 안된다.(168p)

 

 

 

ㅡ 은희경, <중국식 룰렛> 中,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