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맨> 中, 그책
mediokrity
2016. 9. 27. 01:22
2016/9/27
“여쭈고 싶었던 건 경험에 관해서예요. 흔히 그러잖아요. 나이를 먹으면 경험이 늘어난다고. 그래서 좋다는 뜻이잖아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경험이 쓸모 있나요?”
“어떤 경험?”
“뭐, 다녀온 곳, 만난 사람. 이미 겪은 상황. 그래서 다시 그 상황에 마주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런 것들요. 나이가 들어서 현명해진다고 말할 때,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어 줄 그런 것들요.”
“글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전혀 현명해지지 않았어. 내가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건 사실이지. 그런 일을 다시 마주하면, 혼잣말을 하겠지. ‘또 나타났군’이라고. 그래도 도움은 안 될걸. 내 견해로는, 내 개인적으로 보자면, 나는 계속 점점 더 철없고 또 철없고 또 철 없어져. 그게 사실이야.”
“설마요. 정말이세요, 선생님? 젊었을 때보다 철없다고요?”
“훨씬 훨씬 더 철없지.”
“그럼, 경험은 아무 쓸모도 없나요? 경험을 쌓은 뒤나 아무 일도 겪지 않았을 때나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세요?”
“아니, 그런 말은 아니야. 내 말은, 경험을 이용할 수 없다는 뜻이야.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지 않으려 하면, 다시 말해서,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그 일을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게 오히려 경이로울 수 있지.”(182~183p)
ㅡ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맨> 中, 그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