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디트리히 슈바니츠, <교양> 中, 들녘

mediokrity 2016. 9. 27. 09:53

2016/8/19



토머스 쿤이 이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어갔을 때, 그는 과학의 발전이란 여태까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학의 발전이란 더 많은 진리의 끊임없는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난폭한 선거전과 정권 교체를 동반하는, 임기가 있는 일련의 정부들로 이루어진다.
쿤은 어떤 과학에서나 하나의 지배적인 학설이 있으며, 이 학설은 서로 보완하는 주도적 개념들과 배후의 가설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런 가정들은 당연하고도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논증도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것들은 과학적 합의를 떠받친다. 그러한 주도 개념과 가정들의 네트워크는 하나의 이론보다는 규모가 크고, 세계관보다는 규모가 작다. 쿤은 이것을 모델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에서 차용해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지배적 패러다임을 확증하는 데에 몰두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정부를 구성하고 통상적인 과학을 운영한다.
그러나 언제나 소수의 비추종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설명될 수 없는 문제에 매력을 느낀다. 당연히 그들은 정부로부터 불신임을 당하고 반대의 길로 나아간다. 이때 그들은 더 많은 사실, 더 많은 추종자를 모아 마침내 지배적 패러다임을 총공격하고 심지어 정부도 인수하고 또 과학적 도그마로서 그들의 새로운 학설을 창설하고, 과학의 ‘새로운 언어’를 널리 보급한다. 쿤은 이러한 과정이 진행될 때 과학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또한 오랜 선거전을 치른 후 반대당이 정부를 전복시켜 결국 정부를 이양 받는 민주적 정권 교체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은 기존 정부의 구성원들에게는 상당히 고통스럽다. 그 이유는 그렇게 됨으로써 그들의 과학자로서의 업적은 평가절하되고, 또 폐물로 간주되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까지 옛 패러다임을 방어하는 것이다. 플로지스톤이 자발적으로 소멸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했다. 기성 과학의 이러한 끈질김은 얼핏 보기에, “기득권자는 각성시키지 힘들다”는 속담에 대한 증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끈질김은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생산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히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할 때 물샐 틈 없이 이론을 구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새로 성립되는 정부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통치하기 시작한다. 물론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새로운 인식이 또다시 모아진다면 정권 인수과정은 새롭게 시작된다.(522~523p)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을 생각은 없으나 아주 대략적으로라도 그가 논의하는 주장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위의 2p 분량의 내용만 읽어봐도 대충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막상 무엇을 읽어야 할지 마음속으로 결심이 서지 않았는데 도서관 사서가 성가시게도 “무엇을 찾으시나요?”라고 채근하듯이 묻는다면, 이런 말로 대응하면 된다. “18세기 후반부에 있었던 회중시계의 대중적 확산에 관한 연구서들을 찾습니다.” 그러면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잠해질 것이다.(621p)

-작가 양반이 이런 유머를 좋아 하는 것 같은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ㅡ 디트리히 슈바니츠, <교양> 中,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