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 中, 민음사
2016/10/22
「내가 섭섭하다고 한 거 그동안 등장 인물들에게 정이 들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막상 영화가 끝나니까, 모두가 죽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발렌틴, 너도 조금은 정이 있는 사람이네」
「그런 건 어디에선가 드러나게 되어 있어····· 내 말은 인간의 나약함을 뜻하는 거야」
「그건 나약함이 아니야」
「사람이 정을 붙이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은 참 이상한 현상이야····· 그건····· 마치 우리의 정신이 쉴새없이 그런 감정을 분비해 내는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위에서 소화액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것 같아?」
「그래. 그건 잘못 잠긴 수도꼭지 같아. 그러면 물방울들이 아무것에나 마구 떨어지지만, 그걸 멈추게 할 수는 없거든」
「왜?」
「나도 잘 모르겠지만······ 컵에 물이 가득 차면, 넘치는 법이니까」(61-62p)
「아주 이상하게 끝나지?」
「아니, 아주 멋진데. 그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적어도 일생에 한번은 진정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는 의미니까. 비록 그와의 관계는 끝이 났을지언정·····」
「행복하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면 더욱 고통스럽지 않을까?」
「몰리나, 한 가지 명심해 두어야 할 게 있어. 사람의 일생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만, 모두 일시적인 것이야. 영원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래, 맞아. 하지만 조금 더 오래가는 것은 있어」
「우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돼. 좋은 일이 일어나면 오래 지속되지 않더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하기는 쉬워. 하지만 그걸 진정으로 느낀다는 것은 다른 문제야」
「그러면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자기 자신을 납득시켜야 되는 거야」
「그래, 맞아. 하지만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가슴속의 이성이 있지. 아주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가 한 말이야. 그래서 내가 널 비웃고 있는 거야. 그가 누군지 이름까지도 기억할 수 있어. 바로 파스칼이야. 어때 졌지!」(341-342p)
ㅡ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 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