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中, 열린책들
2016/11/29
어떤 백신이라도 특정 개인에게서는 면역을 형성하는데 실패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 같은 일부 백신은 다른 백신들보다 효과가 좀 떨어진다. 하지만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이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접종하면, 바이러스가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져서 전파가 멎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감염을 모면한다. 자신은 백신을 맞았지만 미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은 맞지 않았지만 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보다 홍역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은 건 그 때문이다.(35p)
과학은 <대단히 집단적인 사업이다>. 그것은 집단의 생산물이다.(39p)
<위험 인식, 즉 사람들이 주변 환경의 위험 요소에 대해 내리는 직관적 판단은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증거에 완강하게 저항하곤 한다.> 역사학자 마이클 윌리히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들은 오히려 겁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운전을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다.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너무 오래 앉아 있는다. 그러면서 오히려 통계적으로 따져서 별달리 위험하지 않은 것들을 걱정한다. 우리는 상어를 무서워하지만, 순 사망자 수로 따지자면 지구에서 제일 위험한 생물은 모기일 것이다.(59p)
슬로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 물질의 위험을 평가하는 데 쓰는 방법을 가리켜 직관적 독성학이라고 불렀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이 접근법은 독성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과는 다르고 대체로 그것과는 다른 결과를 낳는다. 독성학자들은 <용량이 독을 결정한다>고 본다. 어떤 물질이든 과잉으로 쓰이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은 아주 많은 용량일 때는 인체에 치명적이라, 2002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주자가 수분 과잉으로 죽은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을 용량과는 무관하게 안전한 것 아니면 위험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을 노출에 대해서까지 확장하여,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 것은 아무리 짧거나 제한적이라도 무조건 해롭다고 여긴다.
슬로빅은 이런 사고방식을 조사한 뒤, 독성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독성에 대해서 <전염의 법칙>을 적용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작디작은 바이러스에 잠깐 노출된 것만으로도 평생의 질병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해로운 화학 물질에 아주 조금만 노출되더라도 몸이 영구적으로 오염된다고 사정한다. 슬로빅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상태나 임신한 상태와 마찬가지로, 오염된 상태는 모 아니면 도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게 분명하다.>
오염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문화들처럼 우리 문화에도 널리 퍼진 믿음, 즉 무언가가 접촉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의 성질을 옮길 수 있다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오염 물질과 접촉함으로써 우리가 영원히 오염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우리가 제일 두려워하게 된 오염 물질은 바로 우리가 직접 만들어 낸 제품들이다. 독성학자들은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은 인공 화학 물질보다 천연 화학 물질이 본질적으로 덜 해롭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다는 온갖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이 전적으로 선하다고 믿는 듯하다.(62-64p)
백신 접종의 가장 부자연스러운 특징은, 매사가 순조로울 경우 그 때문에 접종자가 질병에 걸리거나 질환을 드러내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67p)
우리 몸은 분명 경계가 아니지만, DDT는 카슨의 우려와는 좀 다른 물질이었다. 카슨은 DDT가 널리 암을 유발하는 발암 물질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침묵의 봄’ 출간 후 몇십 년에 걸쳐 시행된 DDT 연구는 그 가설을 지지하지 않았다. DDT에 심하게 노출된 공장 및 농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숱한 연구가 이뤄졌지만, DDT와 암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특정 암을 살펴본 연구에서도 DDT가 유방암, 폐암, 고환암, 간암, 전립샘암 발병율을 높인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종양학자인 아버지에게 했더니, 아버지는 어릴 적 마을에 트럭이 와서 온 동네에 DDT를 살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은 살포 중에는 집 안에 있어야 했지만, 트럭이 지나가자마자 뛰쳐나가 놀았다고 한다. 여태 나뭇잎에서 DDT가 똑똑 떨어지고 화학 물질 냄새가 공기에 감도는데도 말이다. 카슨이 DDT의 위험 중 일부를 과장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몇몇 사실을 틀리게 말했다는 것에 대해 아버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할 일을 제대로 했으니까>. 카슨은 우리를 일깨웠다.(70-71p)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니까 내가 내다볼 수 있는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백신을 맞히지만), 그럼으로써 내가 내다보지 못하는 재앙의 위험을 감수하는 셈이야.(103p)
백신 속 포름알데히드가 암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미량의 물질에 대한 공포라는 점에서, 즉 사람들이 해당 물질의 다른 흔한 공급원들을 통해 접하는 양보다 상당히 더 작은 양을 두고 형성된 공포라는 점에서 수은이나 알루미늄에 대한 공포와 비슷하다. 포름알데히드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담배 연기에 들어 있을뿐더러 종이 가방과 종이 타월에도 들어 있고, 가스 난로나 벽난로에서도 나온다. 많은 백신에 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하는 데 쓰이는 포름알데히드가 미량 들어 있는데, 포름알데히드를 유리병에 담긴 죽은 개구리와 결부시켜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경각심을 느낄 법도 하다. 고농도라면 정말 유독하지만, 포름알데히드는 인체가 만들어 내는 물질인 데다가 대사 활동에도 꼭 필요한 물질이다. 게다가 애초에 우리 몸에서 순환하고 있는 포름알데히드의 양은 백신 접종으로 얻는 양보다 상당히 더 많다.
수은으로 말하자면, 아이가 백신 접종보다 주변 환경에서 접하는 수은이 더 많다는 게 거의 늘 확실하다. 백신의 면역 반응을 강화하는 증강제로 자주 쓰이는 알루미늄도 마찬가지다. 알루미늄은 과일과 곡물을 비롯한 많은 것에 들어 있고 물론 모유에도 들어 있다. 알고 보니 모유는 전반적인 주변 환경만큼 오염되어 있는 물질이었다. 모유를 분석한 실험실들은 그 속에서 페인트 희석제, 드라이클리닝 용액, 내연제, 농약, 심지어 로켓 연료를 검출해 냈다. 저널리스트 플로렌스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화학 물질들은 대개 극미량만 들어 있지만, 그래도 만일 사람의 젖이 동네 피글리위글리 슈퍼에서 팔린다면 일부 제품은 DDT나 PCB(폴리염화바이페닐) 잔류량에 대한 연방 식품 안전 기준에 걸릴 것이다.>(114-115p)
순수함, 특히 신체적 순수함은 언뜻 무해한 개념으로 보이지만, 실은 지난 세기의 가장 사악한 사회 활동들 중 다수의 이면에 깔린 생각이었다. 신체적 순수함에 대한 열정은 맹인이거나 흑인이거나 가난한 여자들에게 불임 시술을 실시했던 우생학 운동의 동기였다. 신체적 순수함에 대한 걱정은 노예제가 폐지된 뒤에도 한 세기 넘게 살아남았던 인종 혼합 결혼 금지법의 이면에 깔린 생각이었으며, 최근에서야 위헌으로 판정된 남색 금지법의 이면에 깔린 생각이기도 했다. 모종의 상상된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노력 때문에, 그동안 인류의 유대는 적잖이 희생되어 왔다.(117-118p)
그는 B형 간염 백신에 대해서 <이 백신은 공중 보건의 관점에서는 중요하지만 개인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말이 말이 되려면, 우리는 개인이 공중의 일부가 아니라고 믿어야만 한다.(166p)
오늘 날 주로 전쟁과 결부되어 쓰이는 <양심적 거부자>란 용어는 원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179p)
양심적 거부자는 늘 전염병에 기여할 잠재력을 품은 위태로운 위치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도덕적 해이라고 부르는 상황, 즉 보험으로 보호받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다는 상황에 처한 셈일지도 모른다. 법률은 일부 사람들이 의학적, 종교적, 철학적, 이유에서 백신 접종으로부터 면제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는 문제는 정말로 양심의 문제다.(186-187p)
오늘날의 미디어 문화는 과학적 이해의 씨앗을 왜곡시킴으로써 비만 유전자나 언어 유전자 혹은 동성애 유전자가 발견되었다는 선정적이고 단정적인 기사 제목으로 바꿔 내고, 사랑이나 공포나 제인 오스틴을 감상하는 자질이 뇌의 어느 부위에 있는지 알려 주는 뇌 지도를 그려 낸다. 과학의 원동력은 답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무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213p)
불확실한 종말의 시대에, 아버지는 스토아 철학을 읽는 데 취미를 붙였다. 종양학자의 취미로서 별로 놀랍진 않다. 아버지가 스토아 철학에 끌린 이유는, 내게 설명하신 데 따르면, 우리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통제할 순 없지만 그 일에 대한 감정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230p)
사람들이 편견으로 기우는 경향성은 스스로가 특히 취약하다고 느끼거나 질병에 대해서 위협을 느낄 때 좀 더 강화된다고 한다. 일례로 한 연구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은 임신 초기 단계에서 외국인 혐오를 좀 더 많이 드러낸다. 슬프게도 우리는 자신이 취약하다고 느낄수록 좀 더 편협해지는 것이다.(239p)
19세기 의사들은 암을 문명과 연결짓곤 했다. 급하고 복잡한 현대 생활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체에 병리적 성장을 촉진하는 탓에 암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연결은 옳았지만, 인과는 틀렸다. 문명이 암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문명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함으로써 암을 드러낼 뿐이다.(272-273p)
ㅡ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