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中, 펭귄클래식코리아

mediokrity 2016. 12. 2. 13:42

2016/12/2

 

 

화가들이란 얼마나 기이한 족속이란 말인가! 자네들은 명성을 얻으려고 무엇이든 하지. 그러면서 명성을 얻고 나면 그걸 즉시 내팽개친단 말이야. 그건 어리석은 짓일세. 왜냐하면 세상에서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나쁜 건 단 하나뿐이니 말일세. 그건 남의 입에 전혀 오르내리지 않는 거라네.(45p)

 

 

자넨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그 말은 곧 자네가 모두에게 무관심하단 걸세.(53p)

 

 

종류를 불문하고 낭만적인 것의 가장 나쁜 점은 결국 그것이 사람을 낭만적이지 않게 만든다는 거지. (...) 충직한 사람들은 사랑의 변변찮은 면밖에 알지 못하지만, 충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랑의 비극까지도 알거든.(59p)

 

 

“젊은이란 간직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중 하나라오.”

“난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헨리 경.”

“물론, 지금은 느끼지 못할 거요. 장차 나이가 더 들어 주름이 지고 추해지면, 당신의 생각이 이마에 선을 그어놓고, 당신의 열정이 추악한 불길로 입술에 낙인을 찍어놓으면 느끼게 될거요. 끔찍하게 절감하게 될 테지. 지금은 당신이 어디를 가든 세상을 매료시킬 수 있을 거요.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까?····· 당신은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어요, 그레이 씨. 인상을 찌푸리지 말아요. 그게 사실이니까. 아름다움은 재능의 한 형태라오. 사실상 재능보다 더 고상한 것으로, 설명조차 필요 없는 것이지. 마치 태양처럼 혹은 봄날처럼, 혹은 검은 물에 비친, 우리가 달이라 칭하는 은빛 조개처럼 말이오. 그 점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다오. 그 속에는 통치자의 신성한 권리가 담겨 있거든.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왕자가 되죠. 당신의 미소는? 그렇지, 젊음을 잃어버리면 당신은 더는 미소를 짓지 않을 테지·····. 혹자는 아름다움이란 단지 피상적일 뿐이라고 말한다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사람의 사고만큼 피상적이지는 않아요. 내게는 아름다움이야말로 경이로움 자체와도 같다오. 외양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천박하거든. 세상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눈에 보이는 것이라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래요, 그레이 씨, 신은 당신에게 관대했어요. 그러나 신은 그것을 곧 도로 빼앗아갈 거요. 당신은 불과 몇 년 동안 참되고 완벽하며 충만한 삶을 살겠지. 그 젊음이 사라지면 당신의 아름다움도 따라서 사라지고, 그때가 되면 당신은 어떤 것에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불현 듯 깨닫게 될 거요. 혹은 지난 과거의 기억이 패배보다 훨씬 더 쓰라리다는 사소한 깨달음에 만족해야 할 거요. 매번 달이 기울러갈수록 당신은 더욱 두려운 어떤 것과 가까워질 거요. 세월은 당신은 질투해서, 당신의 백합과 당신의 장미를 위협할거요. 당신은 안색이 창백해지고 뺨이 꺼지고 눈이 탁해질 거요. 끔찍한 고통을 느끼겠지·····. 아! 젊은 시절에 그 젊음을 만끽하시오. 지루한 것들에 귀를 기울이느라 황금 같은 시절을 허비하지 말라고요. 가망 없는 실패를 돌이키려 애쓰지도 말고. 당신의 인생을 어리석고 흔해빠진 저속한 것들에게 내줘서도 안 돼요. 그런 것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그릇된 이상이자 타락한 목표라오. 삶을 살아가시오. 당신에게 주어진 멋진 삶을 살아요! 그런다고 해서 잃을 것도 없으니까. 언제나 새로운 감각을 추구해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쾌락주의, 그것이 우리 시대의 바람이라오. 당신은 바로 그러한 것의 가시적인 상징일 수 있어요. 당신 같은 인물이라면 못 할 게 없겠지. 세상은 한동안 당신에게 속할 거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난 당신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혹은 진정으로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오. 당신에게는 나를 매료시키는 것들이 아주 많아서 난 당신에게 반드시 뭔가를 말해 줘야 한다고 느꼈어요. 당신이 인생을 허비한다면 그야말로 비극일 거라고 생각해요. 젊음이 지속될 시간은 조금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아주 조금 남았지. 언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시들어도 다시 피어나지요. 금련화는 내년 6월에도 지금처럼 노랗게 피어날 거요. 몇 달이 지나면 자줏 빛 별이 모습을 드러낼 거요. 그렇지만 젊음은 되찾을 수 없는 것이라오. 스무 살 때 기쁘게 박동 치던 맥박은 점차 약해지겠지. 팔다리의 힘이 빠지고 감각도 무뎌지지. 우린 결국 추악한 인형으로 쇠퇴하고 말 거요. 우리가 그토록 겁냈던 열정에 대한 기억, 우리가 굴복할 용기를 낼 수 없었던 격렬한 유혹에 사로잡힌 채로 말이오. 젊음! 젊음! 세상에서 젊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단연코 없다오!”(72-74p)

 

 

변덕과 평생의 열정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변덕이 조금 더 오래 지속한다는 거요.(76p)

 

 

내 소중한 친구 바질은 그 자신의 매력적인 모든 것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지. 결과적으로 그의 삶에는 그가 지닌 편견과 원칙, 상식밖에 남지 않게 돼. 내가 아는 예술가 중에 인간적으로 유쾌한 이들은 모두 서툰 예술가들이라네. 뛰어난 예술가들은 단지 그들의 작품 속에 존재하고,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은 완전히 지루한 사람으로 남거든. 훌륭한 시인, 참으로 훌륭한 시인은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시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일세. 그렇지만 평범한 시인들은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들이라네. (...)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시에 담아내지 못하는 삶을 살지. 그 반대쪽은 자신이 감히 실현하지 못하는 것을 시로 써낸다네.(122p)

 

 

경험이란 양심과 마찬가지로 행동의 적극적인 동기가 될 수 없다. 경험이 보여 주는 모든 것이란 실상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점, 우리가 한 때 저지른 죄악을 우리가 혐오하지만, 다시 기꺼이 반복하리라는 점이었다.(125-126p)

 

 

제임스는 몇몇 낯선 사람들의 호기심 많은 시선을 접하면서 이따금씩 인상을 찌푸렸다. 천재에게는 인생의 말년에 찾아오고,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생 떠나는 법이 없는 남의 눈초리가 그는 무척 싫었다.(135p)

 

 

아이들은 처음에는 부모를 사랑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판단을 하게 되고 어떤 때는 부모를 용서하기도 한다.(137p)

 

 

가난이 문으로 기어 들어오면 사랑은 창을 통해 달아나 버린다지.(139p)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상대의 감정에는 항상 뭔가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에게 시빌 베인은 터무니없이 신파적으로 보였다. 그녀의 눈물과 흐느낌은 그를 짜증나게 했다.(169p)

 

 

절제는 치명적인 겁니다. 충분함이 한 끼 식사에 불과하다면, 지나친 충분함은 향연과도 같은 것이죠.(295p)

 


“안다는 건 치명적이지. 사람을 매료시키는 건 불확실함이란다. 안개가 끼면 사물이 훌륭해 보이거든.”(331p)

 

 

ㅡ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中, 펭귄클래식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