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장강명, <5년 만에 신혼여행> 中, 한겨레출판
2016/12/20
기대하던 긴 휴식을 맞이하여 서면 교보에서 다 읽었다. 앉아서 3시간의 보라카이 여행을 다녀온 느낌. 보라카이가 작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도 작다는 걸 알게 됐고, 역시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휴양지를 찾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휴가를 이용해서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좋지만 난 역시 휴양지의 바닷가와 수영장이 있는 곳에서 마냥 선베드에 누워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책이나 읽다가 심심하면 수영을 좀 하고 힘들면 누워서 쉬는 걸 반복하는 게 완벽한 휴식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이보다 더 좋은 휴가를 생각해낼 자신이 없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한 일주일 정도만하면 힐링 될 것 같은데 ㅋㅋ.
덧. 꼭 에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작가의 글이 전반적으로 쉽게 읽히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 보기가 질릴 때 '한국이 싫어서'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선량한 부모들이 자식에게 모험을 허락하는 순간은, 자식에게 닥칠 최악의 위험도 자신들이 수습할 수 있을 때이다. 그래서 부자 부모 아래서 자란 젊은이가 더 많은 모험을 누리게 되고, 더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다.(40p)
한국식 결혼식은 우리 생각에 그런 허세와 불필요한 지출의 결정체였다. 내 생각에는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빼빼로데이와 매우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점점 호사스러워지고 있고, 장식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업체들이 호사스러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모두 그게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술에 넘어가고야 만다. 여자들은 싫다고 하면서도 그 호사스러움에 은근히 끌리고, 남자들은 “그래도 평생에 한 번인데······”라는 권유 겸 협박을 이기지 못한다. 남들의 시선이 자식의 행복보다 중요한 부모들은 “요즘 이거 안 하는 분은 정말 안 계세요”라는 말에 넘어간다. 그리하여 그 괴상망측한 예식을 치르고 난 다음에는 합심해서 다른 희생자들을 찾아 나선다. “너희는 몇 평이니? 혼수는 어떻게 했니? 꾸밈비는 얼마나 받았니?” 따위를 물어보면서. “그래도 호텔에서 하는 게 보기에 낫긴 하더라”라거나 “장남이고 개혼인데 최소한은 받아야지”라거나 “남들 시선도 있는데”라고 핀잔을 주고, 때로는 위협하면서.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세대가 미친 짓거리의 뼈대를 세우고, 신세대가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을 “걔 원래 좀 특이하잖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48-49p)
여행을 갈 때 들고 가는 책을, 가벼우면서도 진도 안 나가는 물건이 최고다. 글이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면 여행의 감흥이 반감된다.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여행용 서적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다. 얇은데 정말 더럽게 지루하다. 여행 중에 이 소설을 읽으면 여행의 재미가 틀림없이 배가된다. ‘내가 어디에 있건 더블린에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하는 마음이 절로 드니까.(62p)
그렇게 말하고서 HJ는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을 쉬어?”
“이렇게 여행 구상을 해도 막상 가보면 또 실수할 거 같아서. 큰 구조는 비슷하다 해도 세세한 디테일은 다르잖아. 예를 들어 우리가 코타키나발루의 어느 호텔을 가게 되면, 거기에는 또 나름의 특성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부딪치게 되겠지. ‘아니, 여기 왜 이래?’, ‘어라, 여기에 이런 길이 있었네?’, ‘아 이 수영장은 아침에 와야 그늘이 져서 좋구나’, ‘이 수영장은 오후에 한가하구나’ 이런 걸 4일째에야 겨우 알게 될 텐데, 그러면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지.”(195p)
ㅡ 장강명, <5년 만에 신혼여행> 中,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