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와리스 디리, <사막의 꽃> 中, 섬앤섬

mediokrity 2016. 12. 27. 22:35

2016/12/26

 


할례라는 지독한 악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많은 나라에서 만연해있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그건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었고, 알 수 있는 문제다. 할례에 대한 인식제고가 이 책을 쓴 목적이라면 10페이지로 축약이 가능하다. 90년대와는 달리 2016년의 현재는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할례의 역사와 참상 등에 대해 훨씬 상세하게 알 수 있으며, 그걸 검색해보지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 책을 읽을 리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정보를 얻는다는 측면에서도 실익이 없고, 정보 획득이 아닌 한 인물의 감동적인 인생역정 성공기를 보고 싶은 것이라고 해도 썩 권하고 싶지 않다. 책의 앞부분에서 개인의 기지와 재치, 순발력을 발휘하여 상황을 모면하고 담대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했지만, 영국에 온 이후의 삶은 너무나 전형적이었다. 인물의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불평불만 투성에 아무리 생각해도 순전히 세상 사람들의 호의와 환대에만 의존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류의 성공기에는 전혀 공감되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는 이유가 있다. 삶이란 훨씬 복잡다단한 측면이 있으며 내가 책에서 읽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아마도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는 와스리 디리와 그를 도와준 캐틀린 밀러라는 사람이 함께 썼다는 책 자체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와리스 디리의 평면적인 모습밖에 못 드러낸 것 같다. 여기서 와리스 디리가 악한이라고 치를 떨며 묘사하는 사람들은 두둔할 필요도 없는 쓰레기 같은 인물이지만, 그건 굳이 아프리카라는 특수한 상황을 들지 않더라도 세계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인간의 유형이다. 오히려 그 정도는 애교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런 생각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현실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족 간의 전쟁은 남성들의 자존심과 이기주의, 공격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여성 할례와 다름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두 가지 다 남자들이 자신의 영역과 소유물에 집착해서 생긴 결과다. 여자는 관습적으로, 법적으로 남자의 소유물에 속한다. 남자들의 성기를 잘라버리면,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남자들이 진정하고 세상을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분비되던 테스토스테론이 없어지면 전쟁도, 죽음도, 도둑질도, 강간도 사라질 것이다. 남자들의 은밀한 부분을 잘라놓고, 피를 흘리다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두면 그제야 비로소 자신들이 여성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311p)

 

 

 

와리스 디리, <사막의 꽃> , 섬앤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