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이용재, <외식의 품격> 中, 오브제
2017/1/14
바나나가 비싸 한 송이가 아닌 낱개로 사먹던 시기, 맛을 위해서가 아닌 쌀의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혼분식을 장려했던 시기는 지나갔다. 주말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식사를 하고, TV에서는 각종 먹방과 음식 방송을 내보내고, 인터넷에는 맛집이 즐비하다. 그러나 정말로 잘 먹고 있는가. 배를 곯지 않는 것을 잘 먹는다고 할 수는 없다. 장담하건대 한국은 식재의 다양성이 한심한 수준이고 가격은 말할 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외식수준은 어느 나라와 비교하기도 민망할 수준임에도 모두가 잘 먹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누가 만들어냈는지 알 수도 없는 문구와 그 놈의 김치 타령 및 한식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못 먹고 있을 거라고 본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이 컴퓨터의 구조에 대해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듯이 먹고 살기 위해 모든 식재료와 음식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더욱이 해롤드 맥기의 1300p가 넘는 ‘음식과 요리’같은 책을 읽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은 우리가 죽기 전까지는 평생을 함께 해야 하며 단순히 끼니를 이어가는 차원을 넘어 미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먹는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알아 놓으면 더욱 즐거운 식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 첫걸음이 되기에 충분한 책이다.
갓 구운 빵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헛된 믿음이다. 돌솥밥, 뚝배기 곰탕 등 너무 뜨거워 제 맛을 느낄 수 없는 음식을 생생하다는 이유로 즐겨 먹는 우리식 문화가 가지를 잘못 친 경우다. 맛이 채 어우러지지도 않을뿐더러, 온도가 높아 맛을 제대로 느낄 수도 없다. 따라서 완전히 식힌 뒤, 먹기 전에 다시 살짝 구워야 빵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통곡식빵이라면 구운 뒤에 아예 하룻밤 정도 묵히면 맛이 더 좋아진다. 좋은 빵이라면 딱히 필요 없지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기름이나 버터ㅡ빵에는 가염한 것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ㅡ와 같은 지방으로 맛을 북돋아주는 것도 좋다.(32-33p)
온도 등을 이유로 잔의 다리를 잡고 마시는 게 진짜 매너처럼 퍼져 있는데, 근거 없는 허례허식이다. 인간의 체온은 기껏해야 36.5도, 와인의 1잔 표준 분량은 150ml 안팎이다. 마시지 못할 만큼 온도가 올라갈 수가 없다.(53p)
못을 박겠다. 국산 맥주는 맛이 없다. 입맛이나 취향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굉장히 보편적이며 일관된 평가다. 비어애드버킷 같은 전문 사이트부터,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사이트까지 출처도 다양하다. 버드와이저 등과 비교해도 평균 60점대에 멀겋다 정도는 양반, 오줌에 비교한 극단적인 평가까지 돈다. 대동강 맥주보다는 당연히 맛없다. 수입이 되던 시절 여러 번 마셔 보았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대동강 맥주는 조금 더 깔끔하게 다듬은 칭다오나 하이네켄의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잉글랜드의 망한 양조장(1824년 문을 연 트로브리지의 어셔)의 설비를 통째로 사서 옮겨다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외 선전용이라거나, 잉글랜드에서 옮겨왔으므로 자국 매체가 두둔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맛만 놓고 보자면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건 확실하다.(57-58p)
음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참으로 다양한 소재가 짜증을 유발한다. “쫄깃한 홍합”(현실: 너무 익힘. 해산물은 절대 쫄깃하면 안 된다), “맛있게 맵다”는 짬뽕(현실: 수입 캡사이신 액을 듬뿍 쏟아 부음. 게다가 매운맛은 통각, 즉 상처로 인한 고통이니, 맛있을 수가 없다), 즉석에서 레몬 세 개로 짜주는, 인심 후한 레모네이드(현실: 변질을 막기 위해 껍질에 씌운 왁스는 벗겼을까?) 등 가지각색이다. 울어야 할 시점에 웃고, 칭찬해야 할 시점에 화를 낸다.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는다. ‘입맛은 주관적이니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입맛의 영역에서 평가도 불가능한, 기본을 안 지켜 못 만든 음식을 놓고 그렇게들 말한다. 말을 섞기조차 피곤하다.(67-68p)
여느 육류와 마찬가지로 닭가슴살 또한 결의 반대 방향으로 썰어야 먹기 훨씬 편하다. 인터넷에 퍼진 근본 없는 레시피를 믿고 결대로 쪽쪽 찢지 않는다.(84p)
육수 온도에 얽힌 개념의 차이는 완성된 국물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무조건 펄펄 끓어야 한다. 그렇게 가마솥에서 끓은 걸 잘 식지 않는 두툼한 뚝배기에 담아내야 한다. 거기에 뜨거운 공깃밥마저 만다. 그래야 시원해서 맛있다고들 한다. 혀를 데고 입천장이 벗어지고 온도가 너무 높아서 짠지 단지 맛을 느낄 수조차 없는데도 좋아한다.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음식 문화에 우열이 없다지만 이것만은 서양식이 낫다. 따뜻하지만 뜨겁지 않아야 한다. 온기가 살아 있되, 입과 목에서 불편함 없이 삼키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굳이 수치까지 들먹이자면 섭씨 60도 정도다. 잘 지키는 곳이 은근히 드물다. 손님 탓이다. 식었다며 뜨겁게 데워달라는 요구를 종종 한다고 들었다. 준다면 분명 공깃밥도 말 사람들이다. 완고한 한식의 시각으로 무장하고 양식당에 찾아가는 건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91p)
회식자리의 믿음과 달리, 삼겹살이 아니더라도 고기는 자주 뒤집어 주는 게 좋다. 그래야 고기 양면의 온도차가 벌어지지 않아 더 잘 익는다. 혹 고기를 자주 뒤집어 선배나 상사로부터 구박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근거 삼아 반박할 것을 권한다.(206-207p)
ㅡ 이용재, <외식의 품격> 中, 오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