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中, 펭귄클래식

mediokrity 2017. 1. 16. 14:25

2017/1/10

 

 

장강명의 글을 보고 기대반 근심반으로 읽어나갔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는 않았다. 막 재미있거나 흥미진진한 서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율리시즈와 피네간의 경야에 비하면 양반으로 보인다. 제목이 말하듯이 더블린이라는 공간이 주가 되고 그 곳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단편집이다. 개인적으로는 잘 나가는 친구와의 오랜 만의 만남 후 부인도 그대로이고, 아기와 물건들 모두 그대로인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이전과는 달라져 버렸고, 앞으로는 그 감정과 생각들이 그 일이 있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작은 구름 한 점과 대미를 장식하는 죽은 사람들이 좋았다.

 

 

 

, 딜런 너한테 단단히 부탁한다마는 제발 공부 좀 해라. 그러지 않으면·····.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들은 이런 책망 때문에 서부 개척 시대에 대한 매력이 크게 시들해졌고, 당황하여 씨근거리는 레오 딜런의 얼굴을 보자 한 줄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러나 학교의 속박으로부터 일단 벗어나면 야성의 감흥을 다시금 갈구했다. 왜냐하면 무법천지의 이야기들만이 내게 도피구를 제공해 주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녁마다 벌이던 전쟁놀이도 아침의 학교 수업처럼 마침내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진짜 모험이 나에게 일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진짜 모험은 집에만 처박혀 있는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모험은 밖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68p)

 

 

그는 사진 속의 두 눈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두 눈도 냉정하게 그를 응시했다. 분명히 아름다운 눈이었으며 얼굴도 예뻤다. 그러나 어딘지 모자라는 데가 있어 보였다. 왜 저렇게 철이 없으면서도 고상한 척하는 것일까? 차분한 두 눈이 그를 화나게 했다. 두 눈은 그를 불쾌하게 했고 그에게 도전하는 듯했다. 두 눈에서는 정열도 환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돈 많은 유대인 여자를 들먹이던 갤러허의 말이 생각났다. 유대인 여자의 그 검은 동양적인 눈은 정열과 육감적인 정욕으로 얼마나 가득 차 있을까·····! 왜 하필이면 사진 속의 저런 눈과 결혼했을까?

그는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신경질적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집안을 꾸미기 위해 월부로 사들인 아름다운 가구에서도 무언가 천한 느낌이 들었다. 애니가 손수 고른 것이다 보니 가구를 보면 그녀가 떠올랐다. 가구 또한 아내만큼이나 깔끔하고 예뻤다. 자신의 삶에 대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그의 마음속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조그만 집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까? 갤러허처럼 용감하게 살아보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인가? 런던으로 갈 수는 없을까? 아직도 갚아야 할 가구 대금이 남아 있었다. 책을 써서 출판한다면 길이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148-149p)

 

 

그는 비아냥거림이 빗나간 데다, 가스 공장에서 일했다는 소년을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러낸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의 가슴이 그들 부부만의 비밀스러운 추억, 다정함, 기쁨, 욕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아내는 마음속으로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수치스러운 생각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이모들의 심부름꾼 아이 노릇이나 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물, 속인들에게 웅변을 토하며 광대 같은 욕정을 이상화하는 신경질적인 선의의 감상주의자, 그리고 조금 전에 거울 속에서 얼핏 보았던 가련하고 얼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이마 위에서 불타는 치욕을 아내가 볼까 싶어 본능적으로 불빛 쪽으로 더 등을 돌렸다.(323p)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 펭귄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