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대실 해밋, <몰타의 매> 中, 열린책들

mediokrity 2017. 2. 7. 16:57

2017/2/7

 

 

“우리가 서로에게 속을 털어놓는 게 두루두루 좋을지도 모르겠군요.”카이로는 약간 움찔하더니 다시 침착해졌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이내 부드러워졌다. “당신이 나보다 많은 것을 안다면 나는 당신의 힘을 빌려 소득을 얻을 것이고, 당신 또한 5천 달러의 소득을 얻을 겁니다. 만약 당신이 나보다 아는 게 적다면, 당신을 찾아온 건 실수가 되고 당신의 제안에 따르는 건 그 실수를 악화시키는 꼴이 될 겁니다.”(68-69p)

 

 

“그 남자한테 일어난 일은 이런 겁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사무용 건물을 짓는 공사장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건물은 아직 골격만 있었죠. 그때 빔인가 뭔가 하는 게 10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서 플릿크래프트 앞의 보도를 박살냈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플릿크래프트에게 직접 닿지는 않았어요. 깨진 보도 조각이 튀어 올라 뺨을 강타했을 뿐이죠. 피부만 약간 까진 건데도 나와 만났을 때까지 흉터가 있더군요. 그 사람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흉터를 손가락으로····· 뭐랄까 사랑스럽다는 듯이····· 만졌습니다. 플릿크래프트는 당연히 머리가 쭈뼛 섰지만, 경악했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플릿크래프트는 훌륭한 시민이자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변 환경에 맞추어 사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주변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그가 아는 인생은 공평하고 정연하고 이성적이고 책임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제 빔의 추락이 인생은 본래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훌륭한 시민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에서 식당에 가다가 떨어지는 빔에 맞아 즉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런 운명의 불공평함이 아니었다. 최초의 충격이 지난 뒤 그 점은 받아들였다. 그를 괴롭힌 것은 그가 영위해 온 정연한 일상이라는 게 인생 본래의 길이 아니라 인생을 벗어난 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철제 빔이 추락한 장소에서 5미터도 가기 전에 이 새로운 발견에 따라 자기 인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다시 평화를 되찾지 못하리란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마쳤을 때 변화의 방법을 찾았다. 인생은 난데없는 빔의 추락으로 그 자리에서 끝날 수도 있으니 그 자신도 난데없이 살던 곳을 떠나서 인생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도 남들만큼 가족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정도 재산을 남겨 주고 떠나면 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고, 그의 가족애는 결별을 못 견딜 만큼 남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날 오후에 그는 시애틀에 갔습니다.” 스페이드가 말했다. “거기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갔죠. 두어 해 동안 정처 없이 떠돌다가 다시 북서부로 흘러든 뒤 스포케인에 정착해서 결혼을 했어요. 두 번째 부인의 외모는 첫 부인과 달랐지만, 두 사람은 차이점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골프도 브리지 게임도 잘하고, 새로운 샐러드 요리법을 개발하기 좋아하는 그런 여자 말이에요. 그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충분히 합리적인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자신이 결국 타코마에 두고 떠난 것과 똑같은 생활로 빠져 들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철제 빔 사건 때문에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빔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빔이 떨어지지 않는 생활에 인생을 맞춘 거죠.”(85-86p)

 

 

 

ㅡ 대실 해밋, <몰타의 매>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