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안똔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中, 열린책들
2017/4/11
털 한 가닥을 잡아당기면 아픈데, 많이 잡아당기면 전혀 아프지 않은 건 왜 그렇죠?(37-38p)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 도시에서 사는 겨울 동안, 뾰뜨르 세르게이치가 가끔 우리를 방문했다. 시골에서 사귄 사람은 시골에서만, 그것도 여름에 매력적인 법이다. 도시에서, 게다가 겨울에, 그들은 매력의 절반을 잃는다. 도시에서 차를 대접하면, 다른 사람의 프록코트를 빌려 입은 것 같은 그들은 지나치게 오랫동안 스푼으로 차를 젓는다. 도시에서도 뾰뜨르 세르게이치가 이따금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그 결과는 시골에서와 전혀 달랐다. 도시에서 우리는 우리 사이에 놓인 벽을 더 강하게 느꼈다. 나는 부유한 명문가 출신이지만, 그는 가난하고 더군다나 귀족 출신도 아니다. 그는 보조 사제의 아들로, 임시 예심 판사일 뿐이다. 우리 두 사람은 ㅡ 나는 젊기 때문에, 그는 영문도 모른 채 ㅡ 이 벽이 매우 높고 단단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는 도시로 우리를 방문하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상류 사회를 비판하거나 응접실에 다른 손님이라도 있으면 시무룩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부술 수 없는 벽이란 없다. 하지만 현대 소설의 주인공들은, 내가 아는 한 너무 소심하고 생기가 없고 게으르고 걱정이 많다. 그리고 지나치게 쉽게, 자신이 실패자라는 생각, 그리고 사생활이 자신을 속인다는 생각과 타협한다. 투쟁하는 대신, 그들은 세상이 저속하다고 비판만 할 뿐이다. 그들의 비판 자체도 조금씩 그 저속함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을 모른 채.
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행복은 가까이 있었다. 행복이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는 듯했다. 나는 나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내가 인생에서 뭘 기다리고 바라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음 편히 살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갔고, 밝은 낮들과 따뜻한 밤들이 아른거리며 지나갔고, 꾀꼬리가 노래를 불렀고, 건초 냄새가 났다. 기억 속에서는 사랑스럽고 멋진 이 모든 것들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흔적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안개처럼 아무런 가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것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49-50p)
물론 지성도 영원할 수 없고 덧없지만, 어째서 내가 지성에 끌리는지 당신도 아실 겁니다. 인생은 지긋지긋한 덫입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 성숙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출구 없는 덫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사실, 그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우연에 의해서 무(無)에서 이 세상으로 불려 나온 것입니다·····. 왜? 그는 자기 존재의 의의와 목적을 알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말해 주지 않고 혹시 말해 준다 하더라도 전혀 무의미할 따름입니다. 그가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고, 죽음만 찾아옵니다. 그것도 역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렇게 감옥과 같은 곳에서 똑같은 불행으로 엮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면 좀 나은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분석과 종합을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자유롭고 고매한 사상들을 교환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덫에 걸린 것을 신경 쓰지 않게 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78-79p)
감옥과 정신 병원이 사라지고, 당신의 말처럼 정의가 승리를 한다고 해도, 사물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자연의 법칙은 그대로일 겁니다. 사람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프고 늙고 죽을 겁니다. 찬란한 서광이 당신의 삶을 비춘다 해도 결국은 관속으로 들어가 땅속에 파묻히게 될 겁니다.(86p)
어느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큰 도시들은 지적으로 침체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활발하지요. 말하자면 거기에는 참된 사람들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매번, 이곳으로는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사람들만 옵니다. 불행한 도시입니다!(88p)
“당신 이야기나 합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에게 누가 손가락도 대지 않았고, 으르거나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황소처럼 건강합니다. 아버지의 보호 속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돈으로 공부했고, 그리고 곧장 편안한 직장도 움켜쥐었습니다. 20년 이상 당신은 난방 시설이 잘돼 있고 밝고 하녀까지 딸린, 집세를 낼 필요도 없는 주택에서 살고 있고, 게다가 마음이 내킬 때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당신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라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으며 꿈쩍도 하지 않는 생활을 유지하려고 애썼을 겁니다. 당신은 보조 의사와 쓰레기 같은 자들에게 일을 미뤄 두고 자신은 따뜻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 돈을 쌓아 두고, 책을 읽거나 고상하지만 실없는 여러 가지 생각이나 즐기고, 그리고 (이때 이반 드미뜨리치가 의사의 붉은 코를 힐끔 쳐다봤다) 술이나 홀짝거립니다. 한마디로, 당신은 삶이 어떤지 본 적이 없고, 삶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다만 이론적으로 현실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당신이 고통을 무시하고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헛되고 헛된 현세니, 삶과 고통과 죽음에 대한 내적이고 외적인 무시니, 이성적인 이해니, 진정한 축복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러시아의 게으름뱅이들에게나 가장 잘 어울리는 넋두리입니다. 가령 말입니다, 농부가 아내를 때리는 광경을 당신이 봤다고 합시다. 무엇 때문에 참견하나? 때리도록 내버려 두지,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두 사람 다 언젠가 죽을 테니까. 게다가 맞는 아내가 아니라 때리는 농부가 때린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언짢아할 텐데.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은 한심하고 메스꺼운 일이지만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아낙네가 와서 이빨이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고통은 고통에 대한 관념이고, 게다가 아프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 수는 없고 누구나 어차피 죽는 건데, 그러니 내가 사색하고 보드까를 마시는 걸 방해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시오. 젊은 사람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조언을 구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대답하기 전에 생각을 하겠지만, 당신에게는 이미 대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성적인 이해 아니면 진정한 축복을 얻도록 노력하시오. 그런데 도대체 그 기괴한 <진정한 축복>이 무엇이란 말이오? 물론 대답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곳 쇠창살 안에 갇혀 격리된 채 학대받지만, 그러나 그것은 훌륭하고 이치에 맞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병동과 따뜻하고 아늑한 서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니까. 참 편리한 철학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양심이 깨끗한 현인이라도 된 듯이 느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 이보시오, 이것은 철학도 사색도 넓은 견해도 아니오, 게으름이고, 무기력이고, 잠에 취한 무감각입니다······. 그렇지 않소!” 이반 드미뜨리치가 다시 화를 냈다. 고통을 무시한다지만, 손가락이 문에 끼이면 당신도 목청껏 비명을 지르고 말걸!“(93-94p)
벗어날 수가 없어, 벗어날 수가. 우리는 연약하단 말입니다······. 이전에 나는 침착했고, 밝고 건전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했었소. 하지만 현실이 거칠게 나를 건드리기만 했는데, 나는 좌절하고 말았소······ 붕괴되고 말았소. 우리는 연약하오, 우리는 시시하단 말이오······. 당신도 마찬가지요. 당신은 지적이고 고상한 사람이오. 어린 시절부터 고결한 충동이 몸에 배었지만, 현실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지치고 병에 걸린 것입니다······. 연약하고 연약하단 말입니다!(115p)
지금 대학생은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같은 찬 바람이 류리끄 시대에도, 이반 뇌제 시대에도, 뾰뜨르 대제 시대에도 불었으며, 그때에도 지금처럼 모진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이렇게 해진 짚 지붕과 무지와 우수, 이런 황량함과 어둠과 압박감이 똑같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공포가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천 년이 지나도 현실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154-155p)
실제로, 아침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신경과민을 비웃었고 자신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온을 어쩌면 영원히 잃었고, 미장 작업이 끝나지 않은 이 이층집에서의 행복이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에게 분명해졌다. 환상은 끝났고, 개인의 행복과 평온과는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새롭고 불안하며 자각적인 생활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183p)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고향의 둥지는 그에게 밝고 아늑하고 편안했는데, 지금 농가에 도착해서 보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척이나 어둡고 좁고 또 지저분했다.(185p)
나는 어슬렁거릴 뿐입니다. 나는 땅도 없고,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아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이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좋은 옷을 걸치고 또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겁니다.(229p)
쓰디쓴 경험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여자들을 내키는 대로 불러도 된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 <저급한 인종>이 없다면 그는 단 이틀도 살지 못할 것이다.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는 지루해했고, 기분도 나빠 말도 나누지 않고 냉담했지만, 여자들과 있을 때에는 자유로웠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았다. 심지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여자들과 함께 있다면 편안했다. 그의 외모나 성격, 기질 전체에는 매력적이면서도 좀처럼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 그것이 여자들을 끌고 유혹했다. 그는 이 점을 알고 있을뿐더러, 그 또한 어떤 힘에 의해 여자들에게 이끌렸다.
잦은 경험, 정말로 쓰라린 경험을 자주 했기에 그는 이미, 모든 정사는 처음에는 생활에 유쾌한 변화를 가져다주고 부드럽고 산뜻한 모험으로 생각되지만, 점잖은 사람 특히 속내를 잘 털어놓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모스끄비치들에게는 결국 아주 복잡한 문제로 커져 곤혹스럽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매력적인 여자와 새롭게 만날 때면 그 쓰라린 경험도 슬그머니 기억에서 사라져, 제대로 살고 싶어졌고, 모든 일이 정말이지 단순하고 유쾌하게 여겨졌다.(238p)
오레안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교회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새벽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얄따가 보이고, 산 정상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매미들이 울고 있었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공허한 바닷소리가 우리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잠, 평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래에서는 바닷소리가, 이곳에 아직 얄따도 오레안다도 없었던 때에도 울렸고, 지금도 울리고 있고, 우리가 없어진 후에도 똑같이 무심하고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 변화 없음에,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지상의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에 관한, 완성을 향한 부단한 움직임에 관한 비밀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243-244p)
ㅡ 안똔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