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中, 민음사
2017/5/9
“이봐, 짐. 고양이가 우리 인간들처럼 똑같이 말해?”
“못하지. 고양이는 그렇게 못해”
“그럼, 소는?”
“소도 못해”“고양이는 소처럼 말해, 또 소는 고양이처럼 말하구?”
“아니”
“고양이와 소가 서로 다르게 말하는 건 당연하고도 옳은 일이겠지?”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이제”
“그렇다면, 고양이나 소가 우리 사람들과 다르게 말하는 것도 당연하고도 옳은 일이 아니냔 말야”
“그야 물론 그렇지”
“그렇다면, 프랑스 사람이 우리 미국 사람들과 다르게 말을 하는 것이 어째서 당연하지 않고 옳지 않느냐 말야. 자, 어서 대답 좀 해봐”
“헉, 고양이가 뭐 사람이당가?”
“그야 아니지”
“그렇다면, 고양이가 사람처럼 말할 까닭이 없잖능가. 소는 사람이랑가?ㅡ아니면 소는 고양이랑가?”
“어느 쪽도 아니지”
“그렇다면, 고양이는 사람이나 소처럼 말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말이제. 프랑스 사람은 사람이당가?”
“물론 사람이지”
“그럼 됐네그려! 빌어먹을, 도대체 왜 프랑스 사람들은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 거란 말이랑가? 이걸 대답해 보란 말이랑께!”
더 이상 얘기를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ㅡ검둥이에게 토론을 가르친다는 것은 소 귀에다 경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만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172-173p)
그 사나이들은 가버렸고, 나는 뗏목에 올라탔습니다. 내가 한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참한 마음이었지요. 난 암만 좋은 일을 하려고 별러도 나에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일을 하는 걸 배우지 못한 인간한테는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ㅡ위급한 상황에 부딪히면 뒤를 밀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결국 손을 들고 말지요. 나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가만 있자 내가 옳은 일을 해서 짐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하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기분이 좋지 못했을 거야ㅡ아마 지금과 마찬가지 기분이었을 거야.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옳은 일을 하는 데 힘이 들고, 나쁜 짓을 하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똑같다면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본댔자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그만 딱 막히고 말았지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젠 이 일로 마음을 쓰는 일을 아예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그때 그때에 제일 편리한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221-222p)
“아, 슬프군요!”
“도대체 무엇이 슬프다는 말이오?”하고 대머리 영감이 따져 물었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되고 이런 작자들과 한패가 될 만큼 신세가 영락하고 말았나를 생각하니 말이지요”그리고 그는 헝겊으로 눈 가장자리를 훔치기 시작했지요.
“에이, 이 천벌 받을 놈 같으니라구. 우리들이 뭐 너하고 한패가 되지 못할 게 어디 있단 말이냐?”하고 대머리 영감이 꽤나 거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내뱉었습니다.
“그야, 내겐 과분할 정도이지요. 훌륭한 한패고말고요. 하지만 나를 그토록 높은 지위에서 이렇게 낮은 신분으로 떨어뜨린 작자는 누구지요? 바로 나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니올시다ㅡ천만에요. 나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다 자업자득이지요. 냉엄한 이 세상더러 하고 싶은 대로 최악을 다하라지요. 한 가지만은 나는 알고 있지요ㅡ나를 위한 무덤이 어디엔가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전과 다를 것 없이 돌아가고, 나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겠지요ㅡ사랑하는 사람들, 재산, 그 밖에 모든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 무덤만은 빼앗아갈 수가 없어요. 언젠가 나는 그 무덤에 누워 모든 걸 잊어버리고 내 불쌍한 가슴이 안식을 찾게 될 겁니다”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계속 울어댔지요.(277-278p)
이 거짓말쟁이들이 왕도 공작도 아니고 그저 천하의 협잡꾼이요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 입도 뻥끗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지요. 혼자만 알고 내색을 않는 것, 그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싸움도 일어나지 않고, 귀찮은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놈들이 자기들을 왕이니 공작이니 하고 불러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가족의 평화를 유지하는 한 나는 반대하지 않았지요. 짐에게 얘기해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빠한테서 무엇인가 배운 바가 있다면,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 함께 살아나가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거라는 겁니다.(283-284p)
내가 너희들을 알고 있느냐고?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고말고. 나는 남부에서 태어나 자랐고, 북부에서 산 일도 있다. 그래서 모든 웬만한 인간쯤은 두루 알고 있단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란 겁쟁이지. 북부에선 짓밟으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누구나 다 자기를 짓밟게 하고, 그후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것을 참아낼 만큼의 겸허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올린단 말이다. 남부에서 한 사나이가 자기 혼자서 대낮에 사람들이 가득 탄 역마차를 세워놓고는, 승객들로부터 돈을 빼앗는단 말이다. 너희들 신문들이 너희들을 용감한 사람이라고 불러대니까 정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용감하다고 착각하고 있지ㅡ실은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의 용기가 있을 뿐 용기가 더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 너희들 배심원은 왜 살인자들을 교살 하지 않은 거지? 그것은 그자의 친구놈들이 어둠을 타 등뒤에서 자기를 쏘아 죽이지나 않을까 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이다ㅡ그 친구놈들은 틀림없이 그짓을 해내고야 말 테니까.
그래서 그들은 늘 놓아주지. 그러면 복면을 쓴 겁쟁이들 백명을 거느리고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밤에 가서 그 악당을 사형한단 말이다. 너희들의 잘못은, 너희들이 사나이다운 사나이를 데리고 오지 않은 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잘못이요, 또 다른 잘못은 어둠을 타고 오지 않고 게다가 복면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너희들이 데리고 온 것은 절반짜리 사나이란 말이다ㅡ저기 있는 저 벅 하크니스가 바로 그런 놈이거든ㅡ그리고 만약 벅이 앞장을 서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그저 소동만 일으켰을 뿐이란 말이야.
너희들은 여기에 오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평범한 인간은 귀찮은 일과 위험한 일은 싫어하는 법이거든. 너희들도 그런 것을 싫어하지만 저기 있는 저 벅 하크니스 같은 절반짜리 인간이 <놈을 사형에 처하라! 놈을 사형에 처하라!>하고 외치면 너희들은 물러서기가 두려워지거든ㅡ너희들의 본색이 탄로날까봐서 말이다ㅡ겁쟁이라는 본색 말이다ㅡ그것이 두려워 큰 소리를 지르고 그 절반짜리 사나이 윗저고리 꼬리에 잔뜩 매달려서 대단히 장한 일을 해낸다고 큰 소리를 치고는 대단한 기세로 여기로 몰려왔단 말이지. 이 세상에서도 제일 불쌍한 건 오합지중이야. 군대가 바로 그렇지ㅡ오합지중 말이다. 오합지중은 타고난 배짱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그들의 집단에서, 그들의 상관한테서 빌려온 배짱으로 싸운단 말이다. 하지만 그 선두에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없는 오합지중은 불쌍하기 이를 데 없단 말이다. 자, 이제 너희들이 할 일은 꽁무니를 낮추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 쥐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다.(323-324p)
“여러분, 잠깐 기다리시오! 한 마디 말할 게 있소” 그 말에 사람들은 주춤 걸음을 멈추고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속아넘어갔소. 하지만 우리들은 이 마을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죽을 때까지 늘 이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단 말이외다. 그것은 아니될 일이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빠져 나가서 연극을 칭찬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도 우리처럼 속아넘어가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 모두 피차 똑같은 처지에 놓이는 게 아니겠소. 어디 내 말이 틀렸소?” (“그 말이 옳아!ㅡ판사님 말이 옳다니까!”하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그럼 좋소ㅡ우리가 속았다는 건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맙시다. 자, 어서들 집으로 돌아가서 누구나 다 이 비극을 보러오라고 권합시다”(334p)
“친구를 방문한다고 하는 것은 좋지만 그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한다는 말은 싫어”
“그래요, 그럼 그것은 그만두기로 하지요”그녀에게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ㅡ아무런 해도 끼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것은 사소한 일로 성가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지상에서 사람이 가는 길을 가장 평탄하게 해주는 것은 이와 같이 사소한 일인 겁니다. 그렇게 한마디 해두면 메리 제인은 안심할 것이며, 게다가 돈 한 푼 드는 일도 아니었지요.(407-408p)
이 말에 왕은 살금살금 뗏목의 오두막 속으로 기어들어가 울분을 달래기 위해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공작도 자기 술병을 들고 나섰지요. 그리하여 반 시간 후에는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둑처럼 다시 다정한 사이가 되었고,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점점 더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나중에는 상대방의 팔을 베개로 삼아 코를 골며 잠이 들어버렸지요. 두 사람은 자못 마음이 풀어졌지만, 제아무리 마음이 풀어졌다 하더라도 왕은 돈 주머니를 감춘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잊어버릴 만큼 풀어지지는 않았지요.(441p)
ㅡ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