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루쉰, <아Q정전> 中, 창작과비평사
2017/5/29
나는 혹한을 무릅쓰고, 이천여 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이십여 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 아! 이것이 내가 이십년 동안 늘 그리워하던 고향이란 말인가?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전혀 이렇지 않았다. 내 고향은 훨씬 더 좋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기억해내고 그 좋은 점을 말로 표현하려 하자 그 모습은 사라져버리고 그것을 표현할 말도 사라져버렸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변명했다. 고향은 본래부터 이런 곳이었다고ㅡ진보도 없지만, 내가 느낀 바와 같은 슬픔도 마찬가지로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나 자신의 마음의 변화일 뿐이다.(47-48p)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61p)
아Q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했다. 놈들은 노란 변발을 휘어잡고 벽에 그의 머리를 너덧 번 쿵쿵 짓찧었다. 건달들은 그제야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아Q는 잠시 선 채로, “나는 자식에게 맞은 셈 치자, 요즘 세상은 정말 개판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아Q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다 입 밖으로 말했기 때문에 아Q를 놀리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정신상의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그의 노란 변발을 잡아챌 때마다 사람들이 먼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Q, 이건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다. 네 입으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
아Q는 두 손으로 자신의 변발 밑동을 움켜잡고 머리를 비틀면서 말했다.
“벌레를 때린다, 됐지? 나는 벌레 같은 놈이다····· 이제 놔줘!”
벌레가 되었어도 건달들은 놓아주지 않았다. 전과 똑같이 가까운 아무데나 그의 머리를 대여섯 번 소리나게 짓찧었고, 그런 뒤에야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들은 이번에는 아Q도 꼼짝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십초도 지나지 않아 아Q도 역시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는 자기가 자기경멸을 잘하는 제일인자라고 생각했다. ‘자기경멸’이라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일인자’이다. 장원도 ‘제일인자’이지 않은가? “네까짓 것들이 뭐가 잘났냐!?”
아Q는 이처럼 여러 가지 묘법을 써서 적을 극복한 뒤에는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 술을 몇잔 마시고, 또다른 사람들과 한바탕 시시덕거리고, 한바탕 입씨름을 하여 또 승리를 얻고, 유쾌하게 사당으로 돌아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잠이 들었다.
(...)
그는 넋을 잃고 사당으로 돌아왔는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기의 은전 뭉치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제삿날 벌어지는 노름판은 대부분 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니 어디 가서 재산을 찾는단 말인가?
하얗게 반짝이는 은전 더미! 더구나 자기 것이었는데ㅡ지금은 없어져버린 것이다! 자식이 가져간 셈 치자고 해도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자기를 벌레라고 해보아도 역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도 이번에는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그러나 그는 금세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힘껏 연달아 두 번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리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때린 것이 자기라면 맞은 것은 또 하나의 자기인 것 같았고, 잠시 후에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았으므로ㅡ비록 아직도 얼얼하기는 했지만ㅡ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웠다.
그는 잠이 들었다.(71-74p)
“내가 어렸을 때 말야, 벌이나 파리가 한곳에 앉아 있다가 무엇에 놀라면 즉시 날아가지만 조그맣게 한바퀴 돌고 나서는 아까 그 자리로 되돌아와 내려앉는 것을 보고 참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뜻밖에 지금 나 자신도 기껏 조그맣게 한바퀴 돌았을 뿐 제자리로 날아 돌아온 것이야. 게다가 뜻밖에 자네도 돌아왔군. 자네는 좀더 멀리 날아갈 수 없었나?”
“글세, 아마 나 역시 조그맣게 한바퀴 돈 것에 불과할걸.”(158p)
ㅡ 루쉰, <아Q정전> 中, 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