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주경철, <문화로 읽는 세계사> 中, 사계절
2017/6/14
사모스 출신의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07년경에 아테네에 학원을 세웠다. 그의 철학의 핵심 단어는 ‘쾌락’이었다. 사실 쾌락을 추구한다는 그의 철학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달랐지만 큰 의혹과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그의 추종자들은 여자와 노예를 포함하는 친밀한 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더 오해를 받은 것 같다. 그의 은둔과 쾌락의 실제 내용은 이런 것이다.
쾌락이 목표라고 할 때 그 뜻하는 바는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 아니라 (·····) 육체의 고통, 정신의 교란으로부터 해방이다. 유쾌한 삶을 가져오는 것은 음주나 끊임없는 향연도, 성적 쾌락도, 또 값비싼 식탁 위의 생선과 그 밖의 진수성찬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취사선택 행위의 원인을 찾아내고, 정신에 최대의 혼란을 일으키는 억측을 추방하는 냉정한 이성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쾌락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신나게 놀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멀리한 안정된 마음의 상태, 곧 아타락시아(마음의 평정)를 의미한다. “죽은 뒤 신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해체되면 다른 삶이란 없다는 것,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신들은 이 세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깨달음으로써 아타락시아를 얻을 수 있다.” (89-90p)
그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때에는 퍽 근사하게 들리지만, 질문을 해 보면 그는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는 장광설에서는 대가였고 지성에서는 한심하였으며 이성에서는 빈껍데기였다. 그라는 나무는 멀리서 보면 잎이 무성하여 눈길을 끌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매라고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진상을 알게 된 나는 더 이상 그의 학교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150p)
이 시대 주류의 사고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뒤집고 “믿기 위해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 것’은 먼저 믿음부터 가져야 하고 그 근거 위에서 다른 것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아벨라르의 ‘믿기 위해 이해한다.’는 태도는, 먼저 사물을 따져 보아야 하고 그것이 확실하게 이해가 되면 그 다음에 그것을 믿는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을 수는 없는 일이며, 자신도 듣는 사람도 지성으로써 파악할 수 없는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그에게 신앙은 계명을 맹목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다.(154p)
인간의 지성은 갈수록 발달하고 사회는 더욱 문명화되는 것일까? 만일 그랬다면 지금쯤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을 것이며, 비참한 탄압과 야만적인 전쟁 같은 것은 아예 사라졌을 것이다. 마녀사냥과 같은 현상을 보노라면 우리 마음속에 집단 광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마녀사냥은 그 모습 그대로는 근대 초 유럽의 특이한 현상이지만 유사한 현상은 언제나 있었다. 사회 전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불순한 세력! 그것은 히틀러에게는 유대인이고, 파시스트들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이며, 남한 정권에게는 북한이 사주하는 불순 세력이고 북한 정권에게는 ‘남한과 미제의 스파이들’이다. 때로 권력은 일부러 그런 위험세력을 조작해 내서 사람들을 선동하려 한다. 그런 조작이 너무나도 쉽게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내면에 ‘마녀사냥’식의 충동이 잠재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194-195p)
역사 서술에서 후추만큼 독특한 지위를 누리는 식물도 없다. 세계사 교과서를 비롯한 여러 책에서 이런 류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후추에 열광하였다.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에는 고기가 쉽게 변질되어 그 맛을 감추기 위해서 후추를 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후추 맛에 매료되었고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아시아에서 생산된 후추가 대상들의 중개로 아랍 지역을 거쳐서 유럽에 도착하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졌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바닷길을 통해서 직접 아시아로 가려고 했다.”
후추의 용도에 관한 위 글은 사실 틀린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고 전문 역사가들마저 틀린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후추는 변질된 고기 맛을 감추느라고 사용되지는 않았다. 상한 고기의 맛을 좋게 하는 정도로 쓰기에는 후추 값이 너무 비쌌다. 그러면 후추는 어디에 쓰였는가? 답은 후추 맛 그 자체를 즐기느라고 쓰였다는 것이다.
(...)
이런 식으로 후추는 뜻하지 않게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을 구분하는 상품이 되었다. 귀족을 좇아가려는 부르주아들, 또는 상층 부르주아를 좇아가려는 중하층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을 따라하려 했고, 그래서 그들도 기회가 되면 음식에 후추를 팍팍 쳐서 먹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물건이 고급이라는 것은 그 물건을 구하기 힘들 때의 일이다.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직항로가 열린 후 후추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값이 급격히 떨어지자 이제 후추는 과거처럼 ‘품격 있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되지 못했다. 그 후 후추는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조미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247-248p)
1816년에 미국 워싱턴의 퀘이커교도들과 흑인 노예 소유주들이 주축이 되어 미국식민협회가 결성되었다. 퀘이커교도들은 노예제에 반대했고, 노예 소유주들은 흑인들의 해방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은 흑인들을 아프리카에 되돌려보내는 데 합의할 수 있었다. 퀘이커교도들은 흑인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진정한 자유를 찾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선교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희망했다. 반면 노예 소유주들은 그런 이상에서가 아니라 하이티에서와 같은 노예 봉기를 피하자는 생각이었다.
이 협회의 후원으로 1822년에 최초로 흑인 86명이 아프리카의 ‘곡물 해안’이라는 곳에 도착했고, 그 뒤 더 많은 흑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해안 지역의 땅을 구입하기도 하고 현지민들한테서 강제로 빼앗기도 하면서 거주지를 확대했다. 1824년에 이 땅은 당시 미국 대통령(제임스 먼로)의 이름을 따와 먼로비아라고 했으며, ‘라이베리아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이 나라의 가장 큰 역설은,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세운 자유 공화국을 자부하면서 실제로는 미국 출신의 지배자들(이들을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이라 한다)이 현지민들을 노예화했다는 점이다. 이주민들은 이곳에 미국 사회를 재창출하려고 했다. 남부 플랜테이션과 비슷한 집과 교회를 짓고 영어를 사용했다. 미국 국기와 거의 똑같은 모양을 한 라이베리아 국기를 보면 이점을 잘 알 수 있다. 그리하여 5퍼센트에 불과한 이주민들이 현지민들의 땅을 빼앗고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334p)
유럽의 대표적인 음료는 포도주와 맥주이다. 우리가 포도주와 맥주에 대해 ‘음료’라는 말을 쓸 때에는 알코올 도수가 약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로 유럽에서 포도주와 맥주는 취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수분 보충을 위해서 마신다는 의미가 강하다. 유럽의 음식에는 우리 음식과 달리 국이 없으므로 음료수를 따로 준비해야 하는데, 대체로 유럽 지역들은 물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알코올 도수가 약한 술들이 바로 음료수로 사용되는 것이다. 마치 중국의 차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335p)
ㅡ 주경철, <문화로 읽는 세계사> 中,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