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中, 마음산책

mediokrity 2017. 6. 23. 15:00

2017/6/23

 

 

시간은 늘 우리를 쪽팔리게 한다. 우리는 자라지만, 기록은 남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기록은 정지하기 때문이다. 자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쪽팔림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쪽팔림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17p)

 

 

나는 소설 덕분에 바뀌었다. 달라졌고 (내가 보기에)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됐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열심히 듣게 됐다.

(...)

소설 속의 선택과 현실 속의 선택은 분명 다르지만 선택하기 위해 결정하는 방식은 언제나 똑같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 것은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취한 것은 아껴 써야 한다.(40p)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 남성 호르몬이 적어지기 때문에 눈물이 많아진다는 얘기를 한다. 그 말도 맞을 수 있겠다. 내 생각에 눈물이 많아지는 건 경험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다 보니 공감하게 되고, 내 얘기 같고, 내 얘기 같으니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해하지 못하면 눈물은 나지 않는다. 울면 울수록 누군가를 이해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66-67p)

 

 

소리에 점점 예민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청력이 약해지는 게 정상일 텐데, 내 귀는 날이 갈수록 6백만 불의 사나이가 되어간다.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린다. 카페에 앉아 있거나 버스에 앉아 있으면 모든 소리가 나를 향해 날아든다.

(...)

피곤해진 귀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면 아랫집에서는 피아노를 쳐대고 있고, 윗집 아이들은 쿵쾅거린다. 아랫집 아이는 실력이 늘지 않아서 같은 곡을 계속 반복하고 윗집 아이들은 지나치게 명랑하다. 집에 있기 힘들어 영화라도 한 편 볼까 극장에 가면, 앞자리 아저씨는 대놓고 통화를 하시고, 뒷자리 연인은 영화배우에 관한 토론을 하시고, 애들은 울고, 팝콘은 겁나게 씹어대고, 음료는 빨대로 쭉쭉 빨아먹고, 다 먹었는데 왜 자꾸만 빨아서 바람 소리만 내고, 힘들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갑자기 직원이 튀어나와서는 “통로는 앞쪽입니다”하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영화의 여운이 싹 날아가고, 피곤해진 귀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면, 아, 도대체 피아노는 몇 시까지 칠 예정이며, 아이들은 언제 재울 생각들인가.(105-106p)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에 수록된 죽음에 대한 가장 의미심장한 통계는 나이에 따른 자살 성공률이다. 25세 미만 여성이 자살에 성공할 확률은 160분의 1에 불과하지만 65세 이상의 성공률은 3분의 1이다. 남성 노인의 성공률은 2분의 1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인의 자살 행위가 더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선택하지만 노인들은 심사숙고하여 자살을 선택한다. 혹시 자살에 실패할 경우 얼마나 더 비참해질지 노인들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 꼭 죽고 말겠다는 그 마음, 오랫동안 살았지만 더 이상 살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단호한 결론이 만들어낸 그 마음이 너무 비장해 보여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을 회피하기가 힘들어서 자살을 선택하는 거겠지.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이겠지. 그 골목에서 자살을 선택한 모든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218p)

 

 

가장 섬뜩한 공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 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깜깜한 방 안에서 성냥을 켜는 순간, 아주 적은 빛만 보일 때 공포가 생겨나는 것이다.(221p)

 

 

 

ㅡ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中,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