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로재나> 中, 엘릭시르

mediokrity 2017. 6. 30. 10:10

2017/6/29

 

총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마르틴 베크’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두 번째 작품도 읽을 의향이 있다. 대화가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문장이 간결하고도 단정하다.

 

셜록 홈즈로 대표되는 천재적인 탐정 개인의 기지와 재치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평범하나(솔직히 얘기하면 평범하다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의 직업군내에서 일급의 능력을 발휘하는 충분히 유능한 사람들이며, 그런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지.) 직업윤리가 있는 경찰이 힘을 합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영화나 드라마처럼 금방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도 2017년이 아닌 1960년대라면 말해야 뭘 할까. 시스템을 신뢰하는 자에게, 현실적이되 매력적인 인물들이 모여 번뜩이지만 근거가 부실한 직관을 통해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물적 증거를 하나씩 쌓아가며 수사망을 좁히고 범인을 추적하는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충분한 즐거움이리라.

 

 

 

딸이 태어나고 일 년이 지나자 그가 사랑에 빠졌던 밝고 발랄한 아가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결혼 생활은 지루하다고 해야 할 일상으로 안착했다.(38p)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보람이 없었다. 지금은 작은 책상에 앉아서 수첩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정말로 집에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몇 번인가 전화기로 손을 뻗었지만, 매번 생각에 그쳤다.

다른 많은 일이 그렇듯이.(52p)

 

 

함마르는 함께 일하기에 좋은 사람이었다. 늘 침착하고 아주 조금 굼떴다. 두 사람은 사이가 괜찮았다.(79p)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88p)

 

 

오랫동안 개처럼 일하고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니 대수롭지 않은 실마리 하나라도 과대평가하게 되는 것 같군요.(98p)

 

 

대체 뭘 했겠습니까? 땅콩이라도 까면서 놀았겠습니까? 그래요, 미안하지만 이건·····.(150-151p)

 

 

그렇게 많은 정보 제공자가 그렇게 널리 퍼져 있으니 반드시 살인범이 덫에 걸려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논리적인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르틴 베크는 강간 살인 사건에 얽힌 아픈 기억이 하나 있었다. 범행은 스톡홀름 교외의 어느 지하실에서 벌어졌다. 피해자는 즉시 발견되었고 경찰은 한 시간도 안 되어 현장에 도착했다. 살인자를 목격한 사람들이 여러 명이었고 그들이 범인의 인상착의 상세하게 묘사했다. 범인은 발자국, 담배꽁초, 성냥,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물건을 남겼다. 게다가 그가 피해자를 유린한 수법은 몹시 변태적이면서도 특징적이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애초의 낙관은 스스로의 무능에 서서히 좌절로 변했다. 단서가 그렇게나 많았지만 별무소용이었다. 그로부터 칠 년 뒤, 문제의 남자는 또 강간을 시도하다 체포되었다. 취조중 남자는 갑자기 무너져내려 과거의 살인까지 자백했다. 칠 년 만에 해결된 그 범죄가 마르틴 베크에게는 하나의 작은 일화일 뿐이었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선배 경찰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선배 경찰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오백 번쯤, 아니, 천 번쯤 거듭 자료를 훑어보고 증언을 확인했던 것을, 그 일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 년이고 이 년이고 계속했던 것을 마르틴 베크는 똑똑히 기억했다. 종종 뜻밖의 장소나 의외의 상황에서 선배와 마주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선배는 비번이거나 휴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인생 최고의 비극이 된 사건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는 중이었다. 선배는 세월과 함께 쇠약해져서 일찌감치 연금을 받는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 수색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사건이 해결된 것이었다. 전과도 없고 용의자 선상에 오른 적도 없었던 웬 인물이 할란드의 어느 경찰관 앞에서 느닷없이 눈물을 터뜨리며 칠 년 넘게 묵은 교살 범행을 털어놓았다. 너무나 늦게 찾아온 결말이 과연 늙은 형사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안겼을까? 마르틴 베크는 가끔 그게 궁금했다.(229-231p)

 

 

ㅡ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로재나> 中, 엘릭시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