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내소설

ㅡ 김애란, <바깥은 여름> 中, 문학동네

mediokrity 2017. 7. 12. 11:55

2017/7/11

 

 

침묵의 미래가 가장 좋았다. 소설집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된 작품으로 도입부터 심상치 않아 함께 실려 있는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치가 마구 올라갔지만 모든 작품이 고르게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탄력을 잃고 물컹해진 몸 밖으로 땀과 고름, 침과 눈물, 피가 연신 새어나오는 걸 의미했다.’와 같은 문장으로 나이듦의 과정을 즉물적으로 드러내며,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을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묻는 ‘노찬성과 에반’, 독자를 울리기 위해 작심하고 쓴 신파조의 작품이 아님에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한 지점을 건드리는 ‘풍경의 쓸모’와 같은 작품을 읽는 동안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도화가 침착한 얼굴로 이수를 바라봤다. 오래전, 이수가 현관을 나설 때면 '저 사람 저대로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길 가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났다.

ㅡ이수야.

ㅡ응.

ㅡ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ㅡ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115p)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132p)

 

 

어느 때는 너무 흐릿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누군가를 향해, 그 누군가가 원한 미래를 향해 해상도 낮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 속에 붙박인 무지, 영원한 무지는 내 가슴 어디께를 찌르르 건드리고는 한다. 우리가 뭘 모른다 할 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그러니 오래전, 어머니가 손에 묵직한 사진기를 든 채 나를 부른 소리, 삶에 대한 기대와 긍지를 담아 외친 “정우야”라는 말은, 그 이상하고 찌르르한 느낌, 언젠가 만나게 될, 당장은 뭐라 일러야 할지 모르는 상실의 이름을 미리 불러 세우는 소리였는지 몰랐다.(151p)

 

 

옆자리의 학생들이 몇십 분째 누군가를 맹렬히 헐뜯는지라 나는 그만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걔가? 그 교수랑? 어머, 어떻게 그래? 타인이 아닌 자신의 도덕성에 상처 입은 얼굴로 놀란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도 잘 아는 즐거움이었다.(153p)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173p)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182p)

 

 

일터에서건 집에서건 밥 짓는 건 말 그대로 노동이고 어느 땐 중노동이었다. 아주 단순한 요리라도 그 안에는 장보기와 저장하기, 씻기, 다듬기, 조리하기, 치우기, 버리기 등 모든 과정이 들어가야 했다. 수백 명의 밥을 차리고 집에 와선 녹초가 돼 정작 나 자신은 컵라면이나 빵으로 끼닐 때울 때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영양사는 매일 ‘만인의 반찬 투정’을 듣는 직업이었다. 급식 메뉴에 핫도그나 돈가스를 넣어 아이들 입맛에 맞추면 선생들이 꺼리고, 아욱국이나 취나물 등 교사들 식성에 맞추면 아이들이 싫어했다. 예산 문제로 반찬을 검소하게 꾸리면 누군가 내 도덕성을 의심하는 투로 불평해 마음을 다친 적도 있다.(198p)

 

 

가끔 엄마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활달함이랄까 생명력이 실은 무례와 상스러움의 다른 얼굴이었나 싶어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내 사촌언니 두 명이 한 달 새 나란히 사고로 아이를 잃자, 엄마는 ‘어쩌다 이런 일이 동시에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집안 죄받았다 할까봐 부끄러워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낸다’고 했다. 그것도 상복 입은 사촌언니 앞에서. 엄마가 늙었나? 그새 분별력과 자제심을 잃었나? 얼굴이 달아올랐다.(202p)

 

 

드문드문 솟은 풍력발전기를 보자 ‘평화로운 해양성기후’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이 섬나라 하늘이 언젠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하늘, 전쟁에 지친 병사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며 회상한 풍경과 닮아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앞의 ‘청명’이 남의 집에서 떼다 붙인 커튼처럼 느껴졌다. 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고,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한데, 뭐가 됐든 내 것 같진 않았다.(227p)

 

 

ㅡ 김애란, <바깥은 여름>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