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中, 작가정신

mediokrity 2015. 8. 16. 05:32
2015/6/25

 

톨스토이의 작품 중 처음으로 읽은 책. 많은 분량이 아니라 부담도 덜했고 소설도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썼을 당시 톨스토이의 나이가 60대라고 들었는데 노년기에 이른 대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사족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도 죄와벌을 읽고 흥미가 일어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사놨는데 올해 안에 읽었으면 한다.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바로 거짓이었다. 거짓말, 어찌된 연유인지는 몰라도 모든 이들이 받아들인 거짓말, 그는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 아플 뿐이라는 거짓말, 마음을 차분하게 먹고 치료를 받으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라는 거짓말, 이것이 그를 가장 괴롭혔다. 그는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고 고통만 더 심해지며 결국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의 거짓말 때문에 괴로워했고, 사람들이 자기네들은 물론 그도 알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그의 끔찍한 상태를 고려하여 그를 속이려 들고, 그마저 그 거짓말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것 또한 그를 괴롭혔다. 거짓말, 거짓말, 그가 사망하기 전날 밤에도 쏟아진 이 거짓말, 끔찍하고 엄숙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방문, 커튼, 저녁식사에 올려질 철갑상어 등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만 거짓말은 이반 일리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79~80p)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린 후 어느 순간 이반 일리치는 고백하는 게 지독히 창피했지만 누군가 자기를 병든 어린애처럼 불쌍히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는 누군가 살살 어린애를 달래듯 자기를 어루만져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길 원했다. (...) 그러나 직장동료인 세벡 판사가 찾아오자 눈물과 토닥거림에 대한 소망을 감추고 대신 진지하고 엄숙하며 깊이 사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타성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확고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그 자신과 그 주위의 거짓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망쳤다.(81~82p)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모든 걸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야만 믿어질, 바로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을 자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고 있노라고 말했다.(89p)

결혼······. 뜻하지 않게 찾아왔었고 이어진 실망, 그리고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그리고 이 생명이 없는 직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일 년, 이 년 그리고 십 년, 이십 년, 항상 똑같았던 삶. 계속되면 될수록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삶. 산에 오른다고 상상했었지. 그런데 사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 그래 그랬던 거야.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산에 오르고 있었어. 근데 사실은 정확히 그만큼 내 발아래에서 삶은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98~99p)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 써. 일해서 갚으면 되니까.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기다리게 한 후 명세서를 내밀고는 벌금을 물리는 짓거리 따위는 안 해. 우린 정직을 신조로 하지. 나를 위해 일을 하면 나 몰라라 하는 법은 없다, 이 말씀이야.”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니키타에게 정말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앉았다. 그는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할 줄 알았고 니키타를 비롯하여 그에게 금전적으로 매여 있는 이들 모두 그가 자신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돌봐주고 있다고 그를 확신시켜주었다.
“압니다요. 바실리 안드레이치. 소인도 친아버지를 모시듯 잘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지요. 암요, 알다마다요.”
니키타가 대답했다. 그는 바실리 안드레이치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그와 명세서를 놓고 따져봐야 부질없고, 다른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148~149p)

ㅡ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中, 작가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