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中, 민음사

mediokrity 2017. 11. 29. 12:05

2017/11/28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호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 준다.(57p)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심지어는 폴에게 거짓말을 하면서도 폴에게 괴로움을 안겨 줄 생각 같은 건 꿈에도 없었다.(66p)

 

 

그녀는 어리석고 수다스럽고 가식적이었다. 사랑의 행위를 우스꽝스럽게 만듦으로써 그녀는 기묘하게도 그를 노골적인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에게 있는 애정이나 우정, 혹은 막연한 관심을 무화시켜 버리는 그런 태도가 그녀를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대화가 안 통하고 잘난 체하고 저속하고 시시하고 더러운 여자. 난 그런 여자와의 섹스가 좋아.’ 그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68p)

 

 

‘날 완전히 믿는다니. 완전히 믿는 나머지 날 속이고 혼자 내버려 두다니.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참 대단해.’(72p)

 

 

“창문 좀 닫고 아침 식사를 주문해 줘, 자기.”

실망한 로제는 몸을 돌리고는 되는 대로 말했다.

“‘자기’라고? 그게 무슨 뜻인데? ‘자기’라니?”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웃으라고 한 말이 아냐. ‘자기’라는 게 무슨 뜻인 줄이나 알아? 당신은 나를 당신 자신만큼 소중히 여기는 거야? ‘자기’라는 말에 다른 뜻이라도 있나?”

‘이건 좀 심하군.’ 그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도 놀라며 생각했다. ‘여자가 쓰는 말을 문제 삼기 시작하는 건 끝이 가까워졌다는 얘긴데.’(118p)

 

 

 

ㅡ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