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中, 문학동네

mediokrity 2015. 8. 16. 05:34
2015/7/8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소세키의 소설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겠지만 소세키의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이 소설로 시작하는 게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소설이긴 하지만 소세키의 자전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아서(소설 속 주인공인 겐조와 현실의 나쓰메 소세키를 거의 동일시 해도 될 정도) 그 점을 생각하면서 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그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6조의 좁은 다다미방에는 언제나 겐조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일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훨씬 강하게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연히 그는 언제나 안절부절못했다. (...) 그를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신경쇠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런 상태를 단순히 자신의 성격 탓이라 믿고 있었다.(12p)

그는 독선가였다. 처음부터 아내에게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그 점에서는 남편의 권리를 인정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남편의 권리를 인정하는 반면,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만이 있었다. 매사에 우격다짐으로 나오는 남편의 태도는 결코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왜 좀더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가 하는 서운함이 항상 그녀의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재주나 기량을 자신이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무관심했다.(41p)

그는 좀처럼 울지 않는 성격이면서도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사람,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일이 왜 자신에게는 없을까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내 눈은 언제라도 울 준비가 되어 있는데.’(171p)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멀어지지만, 함께 있으면 설령 원수지간이라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지. 결국 그것이 인간이니까.’(177p)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겐조는 불가사의함을 느꼈다. 그 불가사의함에는 주변 상황과 끝까지 잘 싸워냈다는 자부심도 꽤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이미 만들어진 것처럼 여기는 의기양양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발전해왔는지 의심해보았다. 그러나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신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와 시마다의 관계가 끊어진 이유는 현재 때문이었다. 그가 오쓰네를 싫어하는 것도, 누이나 형과 동화할 수 없는 것도 이 현재 때문이었다. 장인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도 현재 때문이 틀림없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현재를 만들어 낸 겐조는 참 딱한 존재였다.(247~248p)

‘당신은 아이를 가져서 행복할 거야. 그러나 행복을 다 누리기도 전에 당신은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어. 앞으로도 당신이 알아차리지 못할 희생을 얼마나 치러야 할지 몰라. 당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참 딱한 사람이야.’(253p)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278p)

ㅡ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