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김신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中, 다산북스
2018/4/16
“가끔 그 사람한테 먹을 걸 줘봐. 초코 바나 캔 커피같이 작은 거. 사람들은 먹을 걸 주면 좋아해.”
그 말을 듣고 뭐 이런 유치한 조언이 다 있나 싶었다. 다 큰 어른한테 먹을 걸 갖다 주라니. 초코 바나 캔 커피 따위로 사람 마음이 흔들리겠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 대하기에 지쳐 한번 실행해봤다. 그랬더니 그분은 내가 건넨 초코 바에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단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그 뒤로는 인사를 받아주고, 내 농담에 어색하게나마 웃어주고, 때로는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 사건(?) 이후로 어른이 되면 사람과 친해지는 자기만의 비법 한두 개는 갖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언니의 간식 기법처럼 언제든 가뿐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유용하겠지.(30p)
사람 사귀는 데 기술이 어디 있겠냐고 해도 분명 있는 것 같다. ‘진심은 통하게 돼 있다’는 상식도 때로는 배신당하기 일쑤고, 아부인 걸 뻔히 알면서도 칭찬하는 말에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과 친해지고, 어딜 가나 사랑받는 사람을 볼 때마다 때로는 부럽고 배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관계를 시작하는 일에 대해 고민할 뿐,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관계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유지인 것을.
기술로 시작한 관계는 일단 시작은 되더라도 기술이 녹슬거나 열정이 사라지거나 내 뜻과는 다른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면 서서히 변한다. 반면, 유지하는 일에 더 집중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시작은 밋밋하거나 덜컹거리더라도 길고 가늘게 이어진다. 한번 내 것이 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순간순간의 잔재미보다 마음 나누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누군가가 품은 진심을 결국에는 알아차리는 사람들. 그들은 관계를 향해 전력 질주하기보다는 천천히 걸어가는 걸 즐긴다. 섬광 같은 매력보다 같이 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을 선호한다. 마치 보노보노와 친구들처럼.(31p)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는 그만큼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데에도 그만큼의 확실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41p)
누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미워한다는 뜻도 아니다. 그는 단지 피곤하거나 생각할 다른 것들이 있거나,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가 가득 쌓인 상태일 수도 있다. 머리로는 다 안다. 실제 그 경험을 할 때는 싹 까먹는 게 문제일 뿐.(59p)
포로리: 왜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아? 그냥 걷기만 하는 건 지루해 보이는데.
야옹이 형: 응. 지루해. 난 그저 아무 일도 없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걷는 셈이야. 걷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 ‘아!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구나!’ 싶어서.
야옹이 형은 이상한 말만 한다고 생각하며 포로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부모님의 모습에 처음으로 신기한 생각이 든다.
아.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좋은 거구나.(97-98p)
꽃길을 걸을 때는 인생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다. 아니, 만끽한다는 실감조차 할 겨를이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인생에 대해, 불행에 대해, 또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행복에 대해 여러 번 곱씹고 떠올리게 된다. 무언가를 자주 생각하고 떠올릴 때는 그것과 한참 멀리 있을 때다. 내가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지 자꾸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도무지 답을 구하지 못했던 것처럼.(156p)
ㅡ 김신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中, 다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