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정한진,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 中, 살림

mediokrity 2018. 5. 1. 12:16

2018/4/30

 

책이 읽기 싫으니 얇은 책에 손이 간다. 게다가 도서관에 있는 큰글자 판으로 읽었는데 큼지막하니 좋았다. 





서구에서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와 인간과의 친밀감이다. 실제로 그러한 친밀감이 개를 애완동물 이상으로 즉, ‘인간의 친구’로 여기게 만든다. 결국 친구인 개를 잡아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구의 동물보호협회에서 아시아의 개고기 식용 관습을 비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먹이를 주면서 돌보고 같이 생활하면서 정이 들었다 하더라도 애완동물을 먹는 경우는 꽤 있다. 마빈 해리스가 들고 있는 예를 살펴보자.

뉴기니 사람들은 돼지를 애완동물처럼 다룬다고 한다. 뉴기니의 여자와 아이들은 돼지와 함께 오두막에서 자고 남자들은 남자들만 자는 공동숙소에서 따로 잔다. 돼지새끼가 젖을 떼면 여자들은 자기 아이들과 함께 품에 안고 기른다. 돼지가 병이 나면 자기 자식처럼 걱정하고 돌보며, 상당히 자란 뒤에는 여자가 자는 방 옆에서 우리를 지어 집안에서 키운다. 그러나 뉴기니인들은 암퇘지 고기를 너무나 좋아해 반드시 조상과 동맹자들과 나눠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렇게 총애를 받던 돼지라도 마을의 돼지축제 때 잡아먹히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팔려 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동아프리카의 딩카족과 같은 유목민들은 소를 뉴기니의 돼지처럼 다룬다. 여기에서는 소를 남자들이 키우는데, 소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뿔이 멋진 곡선으로 자라도록 조금씩 자르고 꼬아 주며 목걸이와 종으로 장식한다. 남편은 소 외양간에서 자고 아내와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집에서 따로 잔다. 하지만 그들은 쇠고기에 대한 미각이 아주 발달했으며 장례식이나 결혼식 그리고 명절의 잔치 때 쇠고기를 즐긴다.

아프리카 북동부의 마사이족 또한 소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이 남다르다. 이들은 소에게 기도를 올리는가 하면, 그 뿔을 윤이 나도록 닦아 주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아이들의 이름을 소의 이름을 따서 지어 주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해 마지않는 소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리고 오로지 소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쓰는 형용사를 10개 이상 가지고 있을 정도로 다른 동물들에게는 거의 무관심하다. 하지만 마사이족도 그토록 사랑하는 소를 잡아먹는다. 죽이기를 꺼려 술에 취해 소의 멱을 따지만, 먹을 때는 아주 맛있게 먹는다.

이런 예들을 볼 때 애완동물이라는 것이 어떤 정해진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또한 어떤 동물이 애완동물로 여겨지는가는 각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인간과의 친밀함이 이 애완동물의 식용을 막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개가 가장 사랑하는 애완동물이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개가 식용하기에는 비효율적인 고기 공급원이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그들에게는 소, 양, 돼지와 같은 다른 동물성 식품이 충분하게 공급돼 굳이 개를 도살해서 섭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는 그 고기보다는 더 가치 있는 다른 서비스를 살아서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 개고기를 먹는 경우는 육류가 항상 부족한 상태이고, 낙농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돼지고기나 닭고기도 쉽게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개가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개가 살아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보다 죽어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더 가치 있는 곳에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개가 사냥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곳에서는 개를 먹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개고기를 먹는 문화의 대부분은 개가 사냥에 꼭 필요하지 않거나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였다. 개고기를 더 잘 먹는 사람들은 사냥을 해서 그 고기를 주로 먹기보다는 곡물을 재배해서 주식으로 하는 집단에 속했다.(35-37p)

 

 

 

ㅡ 정한진,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 中,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