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플루타르코스, <수다에 관하여> 中, 숲

mediokrity 2018. 5. 2. 12:45

2018/5/2

 

 

81-85p는 평생 머리에 새기며 되뇌어야 할 내용.

 

 

 


확실한 것은, 말을 하지 않아 이득이 된 경우는 많아도, 말을 하여 이득이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말할 수 있어도, 일단 말한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엎질러진 물이다. (29p)

 

 

비밀을 지키지 않았다고 대체 무슨 권리로 남을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 알려져서는 안 될 일이라면 남에게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그대가 비밀을 그대에게서 꺼내어 다른 사람 속에 감추려 한다면, 그대 자신보다 남을 더 신뢰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자가 그대보다 더 나을 게 없다면 그대는 끝장날 것이며, 그것은 그대 책임이다. 그자가 그대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면 그대는 운 좋게 구원받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냈으니까. ‘그는 역시 내 친구이니까.’ 하지만 내가 그를 신뢰하듯 그에게도 신뢰할 친구가 있을 것이며, 그 친구에게도 또 다른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비밀은 수다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며 불어나고 증식한다.(32-33p)

 

 

특정 화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특히 조심하고, 되도록 그런 화제는 피해야 한다. 그런 화제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언제나 거기에 살을 붙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경험이나 재능에서 남들을 능가한다고 생각되는 화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그런 사람은 허영심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자신이 가장 능숙하다고 믿는 일들에 바칠 것이다.

독서광은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문학자는 문법에 관해 토론하기를 좋아하고, 널리 떠돌아다닌 여행가는 낯선 나라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러한 기호도 조심해야 한다. 수다는 언제나 짐승처럼 낯익은 풀밭으로 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때문이다. 소년 퀴로스의 처신이 높이 평가받는 까닭은, 그가 자신이 더 잘하는 종목이 아니라 덜 숙달된 종목에서 경쟁하자고 동년배들에게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동년배들을 능가함으로써 고통을 주기보다는 그들에게서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54-55p)

 

 

좋네, 술라. 무소니우스는 좋은 말을 많이 했는데, 내가 기억하기에 그중 하나가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평생을 치료가 필요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네. 이성이 치료제 역할을 할 경우 크리스마스로즈처럼 즉석에서 한 번 쓰고는 질병과 함께 몸에서 배출되어서는 안 되고, 혼 안에 남아 우리의 판단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일세. 이성의 효력은 약과 같은 것이 아니라 건강식과 같아서,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이라야 건강과 활력을 얻기 때문이네. 한편 충고나 질책은 최고조로 부풀어 오른 정념들에는 별반 효력이 없으며, 간질병 환자들을 깨우기는 하되 병을 낫게 하지는 못하는 냄새 자극제보다 더 나을 게 없다네.(63-64p)

 

 

내가 분노할 때 거울로 비추더라도 못마땅해하지 않을걸세. 자신의 일그러진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본다는 것은 분노라는 격정의 명예를 실추시키는데 적잖이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네.(71p)

 

 

훈련을 통해 우리 혼의 비합리적이고 완고한 요소를 길들이려면 모든 감정의 습관화가 필요하지만, 하인들에 대한 분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한 감정도 없네. 하인들에게 우리는 두려움도 없고, 명예욕도 느끼지 못한다네. 우리는 하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자주 화를 내다 보면 실수를 많이 저지르게 되고, 또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보니 화를 내다가 미끄러운 바닥에서처럼 넘어지곤 한다네. 감정이 개입하게 되면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일세.

유일한 해결책은 온유함으로 권력을 제한하고, 우리를 무르고 무심하다고 나무라는 아내와 친구들의 잦은 불평에 귀를 막는 것이라네. 또 내가 하인들에게 가혹하게 대하곤 했던 것은 하인들이 벌 받지 않으면 못쓰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일세. 나중에야 나는 첫째, 남들을 바루려다 가혹함과 분노로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느긋하게 잘못을 용서해줌으로써 남들을 더 나쁘게 만드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둘째, 나는 그들이 오히려 벌 받지 않음으로써 나빠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징벌보다는 용서가 개선의 시발점이 되는 것을 자주 보았네.

그리고 맹세코, 그들은 매질을 하고 낙인을 찍는 자들에게보다는 머리를 끄덕이며 조용히 명령하는 자들에게 더 기꺼이 복종하는 것을 보았네. 그리하여 나는 분노보다는 이성이 더 훌륭한 길라잡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네. 시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일세.

 

두려움이 있는 곳에 존경심도 있다.

 

천만의 말씀! 존경심이 깃들인 마음속에서만 자기 개선을 수반하는 두려움도 자라나는 법이라네. 반면에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매질은 지난 잘못을 후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잘못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일깨워준다네. 셋째, 나는 우리에게 궁술을 가르치는 사람은 우리에게 활쏘기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과녁을 빗맞히는 것을 금하며, 마찬가지로 제때에 지나치지 않게 유익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벌주라는 가르침도 벌주는 것 자체를 금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늘 명심한다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벌 받을 자들에게서 자신을 변호할 권리를 박탈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줌으로ㅆ 분노를 억제하려 한다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감정이 누그러져서 판단력이 처벌의 적절한 방법과 적정 수위를 발견하게 되니까. 게다가 벌 받을 자가 분노 때문이 아니라 납득한 뒤에 벌 받게 되면 처벌에 반항할 구실이 없어지네. 끝으로, 주인보다 하인이 더 옳은 것처럼 보이는 가장 수치스러운 경우를 피하게 된다네.

알렉산드로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포키온은 아테나이인들이 그런 소식을 너무 빨리 믿고 너무 일찍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말리며 이렇게 말했네. “아테나이인들이여, 그가 오늘 죽어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죽어 있을 것이오.” 마찬가지로 화가 나서 서둘러 응징하려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네. “그자가 오늘 잘못이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잘못이 있겠지. 그가 좀 늦게 벌을 받았다고 해서 해로울 것은 없겠지만, 일찍 벌을 받으면, 옛날에도 그런 일이 흔히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부당하게 벌 받은 것으로 보이겠지.”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누가 닷새 또는 열흘 전에 고기를 태웠거나 식탁을 엎었거나 너무 느리게 명령을 이행했다고 해서 노예를 매질하거나 벌줄 만큼 잔인하겠는가? 그런데 바로 이런 일들이 방금 일어났거나 일어난 지 얼마 안 될 때 우리는 흥분하여 잔인하고 거칠게 대한다네. 안개 속에서는 물체가 더 커 보이듯, 화가 났을 때는 실수도 더 커 보이는 법이지.

따라서 우리는 먼저 그런 생각들을 당장 머리에 떠올려야 하네. 그리고 우리가 감정에서 자유로운 것이 확실하고, 차분하고 침착하게 숙고해보아도 그 행위가 벌 받아 마땅하다 싶으면 단호하게 응징해야 하고, 식욕이 엎어지면 음식을 먹지 않듯이 벌주기를 게을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네. 분노가 가라앉았다고 해서 사건을 묵살하고 벌주지 않으면 우리는 나중에 더욱더 화를 내며 벌주게 된다네. 그럴 경우 우리는 바다가 잔잔할 때는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다가, 폭풍이 일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는 게으른 뱃사공들과도 같다네. 그리하여 우리는 벌주는 데 무르고 나약하다고 이성을 나무라며 분노의 바람에 휩쓸려 무턱대고 앞으로 돌진한다네. 음식은 허기진 사람이 섭취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처벌은 처벌에 허기나 갈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행하는 것이 순리일세. 밥에 반찬이 필요하듯 처벌에 분노가 필요해서는 안 되네. 오히려 벌주고 싶은 욕망을 억제한 다음 마지못해 처벌해야 하네.(81-85p)

 

 

 

ㅡ 플루타르코스, <수다에 관하여> 中,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