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이다혜,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中, 예담
2018/5/25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여행이 일상을 벗어난 아주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일상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른바 ‘편도행 티켓’을 끊어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있지만, 그건 나의 것은 아니다. 아마 그런 여행은 나의 죽음, 그것으로 한 번일 것이다.(7p)
나는 여행을 떠나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을 싫어한다.
우리는 여행에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나 자신을 가지고 간다. 속옷 한 장 없이 떠날 수 있지만 나 자신이 없이는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한다.
진정한 자아는 어디 있는가? 성지에? 템플스테이에? 인도에? 내 자아는 내 집, 내 방에 있지 않을까?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비일상의 경험을 하며 자아를 찾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런 생활을 지속해야 할 일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왕복 여정을 떠난다면, 내 자아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의 상황을 주시할 일이다.(13p)
내가 여행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되뇌는 점이 있다면,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을 받아들일 것.” 오로지 그것을 더 여유 있게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매일의 삶에서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은 내 힘으로 돌파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라면 더 부드럽고 가볍게, 가려고 한 식당이 문을 닫거나, 박물관 입장 줄이 너무 길어서 관람을 포기하거나, 화산재가 날아와서 비행기 운항이 취소되는 일을 통해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변수를 받아들인다. 아마도 나는, 평상시에 대충 ‘해치울’수 없는 것들을 해버리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여행지에서의 선택은 대체로 자유롭다. 여행지에서 실패해도, ‘이곳’(사실 이승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에서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 카드대금이 있군.(14p)
외할머니는 제주도보다 더 먼 곳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일본에 가기보다 일본에서 책을 잔뜩 사오는 편을 택했다. 그때는 겨우 취직한 직후였으니까, 돈을 더 벌면 ‘나중에’라고 생각했다. 변명에 불과했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 깨닫는다. 무엇이든, 지금이 그 나중이다.(24p)
여행이야말로 우아하게 가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집에서 가난한 것보다는, 여행지에서 가난하면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있다는 자위라도 할 수 있으니까. 돈이 없어서 고생을 하고 나면 정말로 뭔가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게 뭔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정신 승리가 따로 없다.(33p)
뉴질랜드 북섬 로토루아에는 와이토모 동굴이라는 곳이 있다. 반딧불 동굴이라고도 불리는데, 동굴의 바닥까지 내려가, 마지막에는 캄캄한 가운데 밧줄을 붙잡고 동굴 바닥을 흐르는 물길 위에 뜬 쪽배에 올라탄다. 모두 안전하게 탄 게 확인되면 안전요원이 설명한다. 이제부터 불을 끌 것이다. 전혀 위험하지 않다. 당신들은 옆에 만져지는 밧줄을 당겨라. 그러면 배는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불을 끄면 위를 쳐다보아라. 그리고 정말 완전한 소등. 암흑. 암흑? 머리 위를 보는 순간 마치 가장 공기가 맑고 빛이 없는 지역 밤하늘처럼 반딧불 수천 마리가 빛나는 장관이 펼쳐진다. 하늘은 멀지만, 동굴 천장은 멀지 않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안전요원의 설명대로 보트를 맨 줄을 당겨가며 앞으로 이동하면서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냥 여기에 더 머물고 싶다고. 밖으로 나와 숲을 산책하면서, 반딧불은 곤충 아닌가? 그 위에 수천 마리가 그러면 어쩌고 있는거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막 떨어지고 그런 것도 있을 텐데, 어두워서 못 본 건가? 으윽. 원효의 해골물 같은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렇게 관광객이 드나드는 일이 반딧불이에게는 괜찮은 것일까도 근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와 그 경험을 떠올려보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것, 그것뿐이다.(49-50p)
‘다름’을 접하는 방식 역시 어른의 여행에서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다른 것들을 구경하기에 머물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같음에 눈이 뜨이는 법이다.(60p)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우리는, 현지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이해 못할 현지어가 내 외모에 대한 품평이나 인종차별적인 욕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라고 해도, 굳이 나쁜 말을 할 이유는 없다. 상대는 알아듣지 못해도 그 말을 하는 나는 내가 한 말을 듣는다. 이런 일은 정말이지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66p)
얹혀 있는 데는 사실 기술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가능한 하지 않는 게 좋다. 친한 친구가 온다고 하면 반겨 맞겠지만, 그게 아닌 대부분의 경우는 오겠다고 하니 그냥 두는 것뿐이다.
당신을 반겨 맞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얹혀 있게 된다면 몇 가지는 당부하고 싶다. 아래 사항에서 한 가지를 택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전부 할 생각을 해야 한다.
1.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가능한 가져다준다.(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소주나 담배, 식재료가 특히 유용할 수 있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어로 된 책이 필요한지 묻고 사다 주면 좋다.)
2. 제대로 된 식사를 현지의 친구나 친구 가족에게 최소한 한 번 이상 외식으로 대접한다.
3. 청소에 신경 쓴다. 매일 침구 정리, 욕실 정리,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 설거지를 해야 한다. 혹시 그곳의 친구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 아예 현금을 주고 숙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얹혀 있기를 그만두게 된 이유는 신세지는 일은 성인이 해도 좋은 일이 전혀 아니구나 싶어져서였다. 돈이 없어서 숙소를 얻을 여력이 없다면, 차라리 여행을 가지 않는 쪽이 낫다고 마음먹기도 했고.(69-70p)
문제는, 제약조건이 없는데도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가라는 것은 어쩐지 ‘없어 보인다’는 강박을 낳는 것이다. 바쁘게, 좋은 데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나 자신을 괜찮게 보이게 한다는 생각.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도 없는 걸 휴가라고 불러도 되는가. 남들이 물어보는 말이 귀찮아서라도 어딘가 다녀와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에 시달린다.(110p)
예전 대학 선배 중에 <어린 왕자> 책을 언어별로 모으는 사람이 있었다. 언어가 다른 다양한 나라들을 여행하고 기록하는 재미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132p)
여행지에서 가져와야 하는 것은 그곳 스타일의 옷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는 법(여행지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뿐이니까)과 타인의 스타일에 간섭하지 않는 태도(아래위로 훑어보면 실례다)일지도 모른다.(135p)
뭘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하는 책의 저자는 대체로 그것을 많이 해본 사람이더라는 생각에서다. 옷장의 미니멀리즘을 설파하는 지비키 이쿠코의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역시 읽다 보면 옷을 버리라는 저자가 누구보다 좋은 물건을 아주아주 많이 사고 써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니멀리즘을 주장하는 책들은 많이 쌓는 삶을 살아본 뒤에 쌓지 말자고 한다. 소식을 주장하는 책을 우리가 너무 많이 먹는 게 문제라는 데서 시작한다. 과잉이야말로 금욕의 가장 소중한 식재료다. 해본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이 메시지부터 받아들이는 것에 있지 않을까.
똥을 굳이 먹어봐야 아나.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줄 아는 것이 문명화된 인간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경험이라는 것은 ‘간접’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0’에 무한히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 경험이 깨달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간접 경험은 그냥 경험을 안 해봤다는 말이다. 사랑을 글로 배울 수 없고, 여행도 글로 배울 수 없다. 한 것과 한 것 같은 것은 다르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안다.
일본에서의 미니멀리즘이 3.11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 촉발된 움직임이라면, 한국에서의 미니멀리즘은 저소득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사고 싶은 만큼 사보니 안 사도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과, 원하는 만큼 사본 적 없지만 그래 봐야 부질없다고 배운 뒤 일단 아끼고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행하지 않을 자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보니 생각의 깊이란 내 집 침실에서도 얻을 수 있더라 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과, 애초에 여행 가도 별것 없으니 안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할 자유를 누린 뒤에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은 자유를 충족시킨 뒤에야 일하지 않을 자유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할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하지 않을 자유’를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해보니 별것 없더라”와 “해도 별것 없대”는 다르다. 여건이 된다면, 결론을 내기 위해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하기를 권한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고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내 안으로 여행하기’를 잘 하려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뭔지부터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다못해 여행을 싫어한다는 사실도, 여행을 해봐야 알 수 있다. 인내와 금기는 엉뚱한 판타지만 키우더라.(155-156p)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다짜고짜 좋아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면 먹는 순간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신의 음성이 귓가에 울릴 것 같지만, 그건 음식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일뿐더러, 맛을 음미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지적인 쾌락이다. 미각은 다른 많은 감각처럼 훈련할수록 더 성취도가 높아진다. 미술이나 음악, 소설 같은 예술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법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배우듯 말이다.(206p)
ㅡ 이다혜,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中, 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