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中, 알마

mediokrity 2019. 1. 19. 13:25

2019/1/18

 

 

지각의 변동가능성, 기억의 부정확에 대한 얘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우리는 모든 동물들이 주어진 시간에 지각하는 사건의 수가 거의 일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에 지각하는 사건의 수가 동물마다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충분하다.

(...)인간은 1초당 겨우 열 건의 사건을 지각하는데, 만약 열 건이 아니라 1만 건의 사건들을 지각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우리가 일생 동안 지각할 수 있는 사건의 수가 일정하다면, 지각하는 사건이 1,000배로 늘어났으므로 수명은 1,00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작 한 달 미만을 살아야 하므로, 계절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서만 알 뿐 전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석탄기라는 뜨거운 지질시대가 있었음을 믿는 것처럼) 더운 여름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세상의 움직임은 너무 느려 우리의 감각으로 보는 것은 고사하고 추론할 수도 없다. 예컨대 태양은 하늘에 그대로 떠 있고, 달의 모양은 거의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가정을 뒤집어, 우리가 주어진 시간에 지각하는 사건의 수가 1,00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치자. 그러면 우리의 수명은 1,000배로 늘어나고, 겨울과 여름은 1년의 4분의 1이 아니라 한 시간의 4분의 1처럼 느껴질 것이다. 버섯과 속성 식물들은 속사포처럼 자라, 세상이 순식간에 창조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1년생 관목들은 펄펄 끓는 옹달샘처럼 순식간에 우거졌다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총알이나 포탄과 같은 동물의 움직임은 우리 눈에 포착되지 않을 것이다. 태양은 별똥별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며 시뻘건 꼬리만 남길 것이다. 어떤 초인간도 당해낼 수 없는 그런 가상적 사례는 동물계 어딘가에서 실현되고 있을 게 분명하므로, 그것을 덮어놓고 부인하는 것은 성급하리라.(44-45p)

 

 

기억은 고정되고 활기 없고 단편적인 수많은 흔적들을 고스란히 재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반응이나 경험들을 바라보는 전반적 태도이미지나 언어의 형태로 저장된 세부 사항을 기초로 하여 상상력이 가미되어 구성되거나 재구성된다.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암기와 반복의 경우에도 기억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억의 정확성을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109p)

 

 

진정 나만의 것으로 보이는 열광과 충동 중 상당 부분이 실은(나에게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후 잊힌) 타인의 제안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타인이 나일 수도 있다.

(...)

이런 식의 망각은 때때로 자가표절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전에 사용했던 구절이나 문장을 마치 새것인 양 재생산하곤 하는데, 가끔 심각한 건망증과 뒤섞여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120p)

 

 

로프터스가 제시한 사례에서 분명한 것은 상상 또는 현실 속의 아동학대가 됐든, 진짜 기억 또는 실험적으로 이식된 기억이 됐든, 오도된 증인 또는 세뇌된 죄수가 됐든, 무의식적인 표절이 됐든, 오귀속이나 출처 혼동에서 유래하는 거짓 기억이 됐든, 외부의 확인이 없을 경우 진짜 기억(또는 아이디어)으로 느껴지는 것차용되거나 암시된 기억(또는 아이디어)’을 쉽사리 구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도널드 스펜스는 이를 역사적 진실과 서사적 진실간의 딜레마라고 불렀다.

나는 형의 도움을 받아 소이탄에 관한 거짓 기억의 원인을 밝힐 수 있었으며, 로프터스도 대상자들에게 그들의 기억이 이식되었음을 공언함으로써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설사 거짓 기억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런 기억이 갖고 있는 현실감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특정 기억이 명백히 모순되거나 터무니없다고 해도 확신감이나 신뢰감이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던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험담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꾸며 냈다고 의식하지도 않으며, 그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일단 하나의 스토리나 기억이 구성되고 생생한 감각적 심상과 강력한 감정이 동반되면, 내적·심리적 방법은 물론 외적·신경학적 방법으로도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기억의 생리적 연관성은 fMRI를 이용하여 조사될 수 있으며, 촬영된 뇌영상을 살펴보면 생생한 기억이 감각영역, 감정영역(변연계), 실행영역(전두엽)을 광범위하게 활성화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어떤 기억이 실제 경험에 근거하든 말든, 활성화 패턴은 사실상 똑같이 나타나는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착오는 비교적 드물고, 우리의 기억은 대부분 굳건하고 신뢰할 만하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132-134p)

 

 

과거의 일이든 미래의 일이든, 시간상으로 가까운 일이든 먼 일이든, 의식의 흐름을 구성하는 다른 부분에 대한 지식은 늘 현재의 사물에 대한 지식과 혼합되어 있다.

과거의 대상들에 대한 정보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한편 새로운 대상들에 대한 정보가 유입됨에 따라, ‘기억 및 경험시간에 대한 전향적·후향적 감각이 탄생한다. 그런 것들은 의식에 연속성을 부여하므로, 그러한 연속성이 없다면 의식을 흐름이라고 부를 수 없다.(178p)

 

 

시각은 통상적인 상황에서 이음새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므로, 우리는 그 밑바탕에 무슨 과정이 깔려 있는지 전혀 눈치챌 수 없다. 시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뭔지를 알려면, 실험동물이나 신경계장애 환자에서 시각의 연속성이 단절되는 장면을 관찰해야 한다. 특정약물중독 환자나 중증 편두통 환자들이 경험하는 깜박거리고 반복되고 흐릿한 이미지는 의식이 불연속적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아이디어의 설득력을 높여준다.

그 메커니즘이야 어찌됐든, 불연속적인 시각 프레임이나 스냅숏의 융합은 움직이며 흐르는 의식의 전제 조건이다.(194-195p)

 

 

신경학자들이 사용하는 암점이라는 용어는 어둠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암점이란 지각의 단절이나 중단을 의미하며, 본질적으로 신경병터에 의해서 생성되는 의식의 갭을 뜻한다. 그런데 암점을 가진 환자는 자신이 경험하는 바를 타인에게 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부인하는 모순에 빠지는데, 그 이유는 손상된 사지가 더 이상 내적 신체상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지 않는 이상 상대방의 암점을 액면 그대로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211-212p)

 

 

과학, 특히 심리학에서 성급한 단순화와 체계화가 과학을 얼마나 경직화시키고 발달을 가로막을 수 있는지를 역설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과학은 일종의 다락방을 갖고 있으며,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것별로 적당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을 거의 반사적으로 그 속으로 집어 던진다. 우리는 수많은 보물들을 사용해보지도 않고 끊임없이 다락방에 처넣어, 결국에는 과학의 발달을 가로막게 된다.(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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