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모두 거짓말을 한다> 中, 더퀘스트
2019/2/9
크게 나쁘지 않았는데 뭐 대단한 게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뭘 기대 했길래? 여러 책이 생각나기도 했다. 빅데이터 인문학, 대량살상 수학무기, 틀리지 않는 법 등등. 읽으면서 조금 불만이었던 점은 글이 산만했다.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바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사례를(그렇게 의미 있는 사례라는 생각도 들지 않음) 줄줄 늘어놓으며 미루고 미루다가 한참 뒤에야 짠하며 풀어놓는 식이라 왜 글을 이런 식으로 구성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구글 검색의 힘은 하나님을 많이 찾는 곳이 남부이고, 닉스가 뉴욕에서 인기가 많으며, 사람들이 어디에서도 나를 검색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데 있지 않다. 그런 것은 설문조사로도 알 수 있다. 구글 데이터가 가진 힘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이야기를 이 거대 검색엔진에 한다는 데서 비롯한다.(16p)
왜 출판물은 좌나 우로 편향할까?
경제학자들은 주요 요소, 즉 해당 지역의 정치 성향으로 곧장 나아갔다. 필라델피아나 디트로이트처럼 어떤 지역이 전반적으로 진보적이면 그곳의 1등 신문은 진보적이다. 어떤 지역이 빌링스나 텍사스 애머릴로처럼 보수적이라면 그곳의 1등 신문은 보수적이다. 달리 말해, 신문은 독자가 원하는 것을 주고자 한다.
신문사의 사주가 입김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보통 신문사를 소유한 사람은 우리 생각만큼 정치적 편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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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우리가 뉴스 매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많은 사람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중에게 영향을 주려는 기업이나 부자들이 미국의 저널리즘을 지배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겐츠코프와 사피로의 논문은 소유주의 두드러진 동기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유주는 대중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서 더 큰 부를 쌓고자 한다.
의문이 하나 더 있다. 더 중요하고, 더 도발적이고 논란거리가 될 의문이다. 미국 뉴스 매체들은 평균적으로 우편향인가 좌편향인가? 매체는 평균적으로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
겐츠코프와 사피로는 신문들이 좌편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아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보수적인 독자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신문이 좌익의 견해를 지지하도록 대중을 움직이려 한다고 의심해왔다.
하지만 이 논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진보 편향은 신문 독자들의 요구에 맞춘 결과일 뿐이다. 신문 독자층은 평균적으로 약간 좌편향이다(겐츠코프와 사피로는 이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다). 신문이 평균적으로 좌편향인 이유는 그것이 독자들이 원하는 견해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음모 따위는 없다. 그저 자본주의가 존재할 뿐.
겐츠코프와 사피로의 연구 결과는 뉴스 매체가 지구상의 다른 산업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암시한다. 슈퍼마켓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으로 선반을 채우고, 신문은 사람들이 원하는 견해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것으로 지면을 채운다.(119-120p)
구글을 이용한 경험을 떠올려보자. 추측건대 당신은 고상한 사람들 앞에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생각을 검색창에 입력하곤 할 것이다. 사실, 미국인 대다수가 구글에 매우 사적인 사항을 이야기한다는 너무도 강력한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날씨’보다 ‘포르노’를 더 많이 검색한다. 남성 25퍼센트와 여성 8퍼센트만이 포르노를 본다고 인정한 설문조사 데이터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133p)
도대체 누가 여자아이에 대한 편견을 만들까?
바로 부모다.
부모는 아이에게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생각에 종종 흥분한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실 ‘두 살 난 내 아이가·····’로 시작하는 모든 구글 검색에 따라붙는 가장 흔한 말은 ‘재능이 있어요’다. 하지만 여아와 남아에 관한 이런 질문이 똑같지는 않다. 부모는 ‘내 딸이 재능 있나요?’보다 ‘내 아들이 재능 있나요?’라는 질문을 2.5배 많이 한다. 지능과 관련된 문구를 사용할 때도 비슷한 편견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내 아들이 천재인가요?’ 같은 대놓고 물어보기에는 쑥스러운 문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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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능이 낮다는 검색을 비롯해 지능과 연관 있는 모든 검색에서 부모는 아들에 관한 질문을 더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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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부모가 딸에게 우선적으로 갖는 관심사는 무엇일까? 주로 외모와 관련 있다. 체중과과 관련된 질문을 생각해보자. 부모가 구글에 하는 질문 중 ‘내 딸이 과체중인가요?’는 ‘내 아들이 과체중인가요?’보다 거의 두 배 많다. 딸의 체중을 줄이는 방법 역시 아들의 체중을 줄이는 방법보다 약 두 배 많다. 재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성 편견은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다. 여아의 28퍼센트가 과체중인 반면 남아의 35퍼센트가 과체중이다. 체중계는 여아보다 남아가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말하지만, 부모의 눈에는 딸이 아들보다 과체중으로 보인다.
부모는 내 아들이 잘생겼냐는 질문보다 내 딸이 예쁘냐는 질문을 1.5배 많이 한다. 또한 딸이 못생겼냐는 질문을 아들이 못생겼냐는 질문보다 거의 세 배 많이 한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아들에 관해 질문할 때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부모는 아들이 ‘행복’한지를 자주 묻고 ‘우울’한지는 잘 묻지 않는다.
진보적인 독자들은 이런 편견이 보수적인 지역에서 더 흔할 것이라고 상상하겠지만 그런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다. 사실, 이런 편견과 지역의 정치적 또는 문화적 구성 사이의 유의미한 관계를 찾지 못했다. 구글 검색 데이터를 처음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2004년 이후 이런 검색이 감소하고 있다는 증거도 없다. 여아에 대한 편견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하며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160-162p)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맞춰진 사이트에 숨는다. 인터넷이 미국인을 분열시키는 상황을 하버드법학대학원의 캐스 선스타인은 이렇게 묘사했다. “커뮤니케이션 시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에 스스로를 가두는 상황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진보주의자는 대체로 또는 오로지 진보주의적인 것을 읽고 보며, 중도주의자는 중도주의적인 것을, 보수주의자는 보수주의적인 것을, 신나치주의자는 신나치주의적인 것을 읽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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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생각에만 맡겨두면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을 확인해주는 견해를 찾는다. 이처럼 인터넷은 분명 극단적인 정치적 분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견해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데이터에 따르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166p)
하지만 이야기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나와 같은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을 확률은 대단히 높지만, 일단의 데이터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얻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가 반대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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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으로 사람들은 오프라인 친구보다 페이스북 친구가 훨씬 많다. 페이스북에서 맺기 쉬운 ‘약한 유대’는 반대되는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가능성을 높인다.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고등학교 때 알던 사람, 먼 친척, 친구의 친구의 친구 등 약한 사회적 관계에 노출된다. 함께 볼링을 치거나 고기 구워 먹을 일은 절대 없는 사람들이다. 저녁식사에 초대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들과도 페이스북 친구를 맺는다. 그러고 그들이 링크한 기사를 본다. 다른 때라면 고려조차 하지 않을 입장의 기사를 말이다.
요컨대, 인터넷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화합하게 한다.
(...)내가 브룩클린의 단골 커피숍에서 백인 민족주의자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와 바이킹메이든88은 둘 다 뉴욕타임스닷컴에 자주 들른다.(170-171p)
페이스북은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나 괜찮게 사는지 자랑하는 ‘디지털 허풍약’이다. 페이스북 세상에서 보통의 성인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카리브해로 휴가를 가고, <애틀랜틱>을 정독한다. 실제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화가 잔뜩 난 채 슈퍼마켓 계산 줄에 서 있고, <내셔널인콰이어러>를 몰래 보고, 수년간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배우자의 전화를 무시한다.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가정생활이 완벽하다. 실제 가정생활은 엉망이다. 얼마나 엉망인지 아이 가진 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토요일 밤이면 모든 젊은이들이 근사한 파티에 간다. 실제로는 대부분이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 페이스북 세상에서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와 다녀온 행복한 휴가 사진을 26장 올린다. 실제 세상에서는 이런 사진을 올린 직후, 구글에 ‘남자친구가 나와 성관계를 갖지 않으려 해요’라는 질문을 올린다. 이때 그 남자친구는 <최고의 몸매, 최고의 섹스, 최고의 구강성교>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179-180p)
이 과정에서 당신은 성인의 여러 가지 행동과 관심사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우리가 태어난 때나 어린 시절의 중요한 시기에 생긴 일 같은 임의적인 사건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97p)
그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 일부 실험들이 보여주듯이 폭력적인 영화가 개봉한 때에 범죄가 늘어났을까? 아니면 차이가 없었을까?
연구팀은 폭력적인 영화가 주목을 받은 주말에 범죄율이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신이 읽은 그대로가 맞다. 인기 있는 폭력 영화가 상영된 주말에, 미국인 수백만 명이 사람을 죽이는 이미지에 노출된 때에 범죄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눈에 띄게 말이다.
이런 이상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으면 처음에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두 연구자는 코딩을 면밀히 검토했다. 실수는 없었다. 그다음에 이들은 이 결과를 설명할 다른 변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시기가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아니었다. 날씨가 이 관계를 얼마간 주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날씨 데이터를 수집했다. 날씨도 아니었다.
(...)
여러 일화와 연구실에서 나온 여러 증거와 매우 찜찜한 느낌이 남긴 했지만 폭력적인 영화를 시청하면 어쩐 일인지 범죄 발생률이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인기 있는 폭력 영화가 상영될 때에는 다른 주말에 비해 범죄율이 이른 저녁부터 감소했다. 달리 표현하면, 범죄율은 관객들이 영화관에 들어서고 있을 때, 즉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기 전에 평소보다 더 낮다.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우선, 폭력적인 영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젊은 남성, 특히 젊고 공격적인 남성이다.
다음으로 범죄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영화관에서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젊고 공격적인 남성에게 <한니발>을 볼 기회가 생기면 그는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젊고 공격적인 남성에게 <런어웨이 브라이드>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그 기회를 버리고 대신 술집, 클럽, 당구장처럼 폭력적인 범죄의 발생 빈도가 높은 곳에 갈 것이다.
폭력적인 영화는 폭력성이 잠재된 사람들이 거리에 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그럼 수수께끼는 풀린 것일까? 아직은 아니다. 데이터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이런 영향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나타났고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이 문을 닫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폭력적인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범죄율은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도 낮게 유지 됐다.
젊은 남성들이 영화관에 있는 동안은 범죄율이 낮더라도, 그들이 영화관을 나와서는 다시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방금 여러 심리 실험이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폭력적으로 만든다고 말한 폭력 영화를 보지 않았는가?
숙고 끝에 범죄 전문가인 연구자들은 또 다른 유레카를 외쳤다. 그들은 알코올이 범죄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미국의 거의 모든 영화관에서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정도로 영화관에 가봤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폭력적인 영화가 끝난 후 늦은 밤에 알코올 관련 범죄가 급격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221-225p)
그는 인터넷의 특정 사이트에 방문하지 않고 견디기가 그토록 힘든 이유를 설명한다. “스크린 뒤편에는 당신의 자기관리능력을 허물어뜨리려는 전문가 1,000명이 있다.”(252p)
대학을 한번 생각해보자. 하버드대학교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대학을 다녔는지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같은 견실한 학교를 다녔는지가 그렇게 큰 문제일까?(272p)
갑자기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슨 문제 때문일까?
ㅡ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모두 거짓말을 한다> 中, 더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