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내소설
ㅡ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中, 창비
mediokrity
2019. 3. 12. 14:58
2019/3/12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을 때, 스물한번째 여자의 남편은 빈정거렸다.
“그렇게 매사 우울해서 어떻게 사니? 차라리 약을 먹어라, 응?”
여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내 우울은 지성의 부산물이야. 너는 이해 못해.”(23p)
남자가 잠결에 실수로 여자를 때렸다. 팔꿈치로 눈두덩을 힘껏 친 것이다. 여자는 멍이 들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좀비 꿈을 꿨어.”
남자는 공포영화를 잘 못 보면서도 즐겨 보는 편이었다. 이해할 만한 일이었지만 여자는 화가 났다. 3일쯤 화가 풀리지 않았다. 4일째가 되어서야 여자는 깨달았다. 여자는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두려운 것이었다. 그때까지 인식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 사이엔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 남자가 머리를 다치거나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 성격이 변해서 때리고 목을 조르면 어떡하지? 최악의 상상들이 연이었다.(26p)
ㅡ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中,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