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김하나,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中, 위즈덤하우스

mediokrity 2019. 3. 31. 21:38

2019/3/31

 

멀게는 ‘가족의 탄생’으로부터, 가깝게는 ‘어느 가족’까지 대안적인 가족의 형태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던 것 같다. 비혼을 지향하는 삶이 꼭 혼자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고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하나의 좋은 역할 모델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내향성이 강하고, 혼자 책 읽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거꾸로 커뮤니티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데서 인격의 다면성을 발견하게 된다.(26p)

 

 

‘수건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당신이 수건을 바꾸는 순간까지다.

자취와 독신의 구분에도 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언제까지를 ‘자취’라고 부르는가? 그건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어느 날, 스스로의 생활을 ‘독신’으로 바꾸어 보르는 순간까지다. 그 이전의 생활은 제각각인 수건들의 시기와도 비슷하다. 어찌어찌 시작되었고, 시작되었으니 그럭저럭 이어진다. 내 생각에 자취와 독신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의 생활을 ‘한시적’인 것으로 여기느냐 ‘반영구적’인 것으로 여기느냐인 듯하다.(85p)

 

 

나중에 심리학에서 나 같은 사람의 애착 관계 형성 양상을 회피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걸 알았다. 공격적으로 말하기보다 부드럽게 둘러서 얘기하고, 마찰이 생길라 치면 상황을 외면해버리기에 독립적이고 쿨해 보이는 이런 사람들은 실은 비겁한 부류다. 실망하기 싫어서 기대하지 않은 척하고, 부딪치기 싫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척하는, 인격이 성숙해서 잘 안 싸우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미숙해서 잘 못 싸우는 사람에 가까웠던 거다. 다투더라도 기분이 상했을 때 내 집으로 돌아와 동굴 같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함께 사는 사람과 싸운다는 건 도망갈 곳이 없어진 거다. 지금까진 누구와의 갈등도 이렇게까지 깊게 제대로 해결할 필요까진 없었다면 이제 절벽을 뒤에 둔 느낌으로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제대로 잘 싸워야 한다.(113-114p)

 

 

언젠가 부부 상담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문제로 싸우느냐는 질문에 아내가 “정말 사소한 걸로 싸워요. 양말을 왜 동그랗게 말아서 벗어놨냐 같은 걸로도 싸운다니까요.”라고 답하자 상담해주는 분이 찰진 경상도 억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부부 사이에는요, 사소한 기 하~나도 읎슴니더. 쌓이고 쌓였든 기 양말 하나로 터지는 거그든요. 컵에 물이 찰랑찰랑할 때 딱 한 방울 더해지면 늠치잖아요. 그거랑 똑같습니더.” 가장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동거인의 사이도 마찬가지다.(117p)

 

 

동거인의 상사였던 <W Korea> 이혜주 편집장님이 결혼 생활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119p)

 

 

생각할수록 각자의 가족에게 우리의 지위는 ‘꿀’이었다. 우리가 각각 결혼을 했다면 시댁 어른들과의 자리가 그렇게 편할까? 사위는 대접받지만 며느리는 오히려 대접을 해야 할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우리의 위치는 사위보다도 더 편했다. ‘딸내미랑 같이 사는 친구’는 각자의 부모님께 의무는 없이 호의만 받는 자리다. 내가 어머님이 보내주신 열무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해서 효도 여행을 기획하거나 집안의 가전제품을 바꿔드려야 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머니께 맛있다고 전해드려!”정도가 끝이다. 우리는 각자의 부모님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뵈면 반갑고 베풀어 주시는 호의에 감사한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친구의 부모님께 뭘 해드릴 의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효도는 셀프니까.(230-231p)

 

 

ㅡ 김하나,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中,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