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존 윌리엄스, <아우구스투스> 中, 구픽

mediokrity 2019. 4. 15. 13:44

2019/4/14

 

 

권력을 주물렀던 이들이 권력은 빼앗기고 목숨을 부지했어···. 그런 삶은 도대체 어떨까?(154p)

 

 

내가 보기엔 도덕주의자야말로 가장 쓸모없고 경멸스러운 존재들이야. 쓸모없는 이유는 지식을 얻기보다 판단을 내리는 데 에너지를 쏟기 때문이지. 단순히 판단은 쉽고 지식은 어렵기 때문에 말일세. 경멸스러운 까닭은 그들의 판단은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무지와 오만의 힘으로 세상에 강요하려 하기 때문이라네.(171-172p)

 

 

섹스투스 폼페이우스가 패한 후 평화가 가능할 줄 알았네. 그렇게 압도적 승리가, 오히려 우리 정부의 안정은 물론 시민들의 영혼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 치명적인 패배라면 흔들리지 않고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네. 여전히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이 남아 있으니까. 그런데 그 희망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 걸세.(172p)

 

 

두 아들 가이우스와 루키우스가 죽었다. 가이우스는 아르메니아에서 부상을 당하고, 루키우스는 병이란다. 어떤 병인지는 모르지만 스페인으로 가는 도중, 마르세유 도시였다는데 편지를 읽는 도중 갑자기 만사가 심드렁해졌다. 아무래도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얘기겠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막상 슬프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치 타인처럼 내 삶을 들여다보며 슬픔과 멀어진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보았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이제 완전히 슬픔이 끝난 것이다. 자아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무슨 대수겠는가. 다만 사랑했던 사람들마저 개의치 않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런데 이제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알량한 호기심마저 그저 담담하고 무의미 할뿐이다.

(...)나는 율리아, 옥타비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딸이다. 나는 루키우스 마르쿠스와 가이우스 사비누스가 집정관에 등극한 해 9월 3일, 로마 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스크리보니아이며, 외삼촌은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다시 말해서 내가 세 살배기일 때 로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아버지가 살해한 약탈자 해적이다.

이런 식의 시작이라면 아테노도루스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200-201p)

 

 

시인들 말이 맞는다면, 젊음은 피가 뜨겁게 들끓는 나날이다. 사랑하는 시간이자 열정의 순간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혜로 냉수 목욕을 하면 젊음의 열병이 치유된다 했던가? 다 개소리다. 인생이 종국에 달해 더 이상 사랑을 잡을 수 없을 때까지 난 사랑이 뭔지 알지 못했다. 젊음은 무지하고 열정은 모호할 뿐이다.(228p)

 

 

티베리우스를 좋아해본 적은 없다. 한 번도. 이유는 몰랐지만. 나중에 깨달은 사실은, 그가 남의 눈 속에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243p)

 

 

공상은 기대를 먹고 자라고 기대는 다시 공상의 양분이 되었다.(291p)

 

 

나도 냉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죽음이 전혀 슬프지 않았다. 관습이기에 슬픈 표정을 하기는 했으나 느낌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 마르쿠스 아그리파는 좋은 사람이었다. 싫어해본 적은 없고··· 어쩌면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298p)

 

 

결국 그 글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듯하구먼. 모두 거짓말투성이야. 내 말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으리라 믿겠네. 자넨 무슨 뜻인지 알 게야. 어느 책이나 솔직하고 사실 관계가 잘못된 곳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거짓말이야. 저 멀리 평온한 다마스쿠스에서 최근 몇 년간 연구를 하고 마무리를 지었을 테니 자네도 내 말을 이해하겠지?

그 책들은 읽고 내 글을 적다 보니, 문득 이름은 내가 맞는데 나도 모르는 남자 얘기를 하는 것 같더군. 이상한 얘기겠지만 지금은 그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 힐끔 일견이라도 하려 하면 안개 속으로 들어가 아무리 눈을 부라려도 흐릿하기만 하니 하는 말일세. 행여 그가 나를 본다면 지금의 이 모습은 알아볼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희화화된 모습을 알아볼까? 아니, 알아보지 못할 걸세.(354-355p)

 

 

다행히, 젊음은 자신의 무지를 보지 못한다네. 도저히 감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지. 무지에 눈을 감고 그래서 후일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는 것도 필경 피와 살에 닮긴 본능 덕분이겠지?(358p)

 

 

거의 육십 년 전 일이네만 그날 오후 연병장에서 율리우스의 피살 소식을 들었을 때가 선명하게 기억나는군. 마에케나스도 함께 있었지. 아그리파와 살비디에누스도. 어머니의 하인이 편지를 가져왔을 때 난 그 소식을 읽고 아픈 사람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네.

하지만 니콜라우스 그 순간, 사실 아무 감정도 없었어. 고통스러운 울음도 마치 타인한테서 흘러나오는 것 같더군. 그러다가 순간 마음이 차가워지는 거야. 그래서 친구들한테서 떨어져 나왔다네. 내가 느끼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들키고 싶지 않았네. 그렇게 혼자서 연병장을 어슬렁거리며 어떻게든 슬픔과 상실감을 끌어올리려는데, 갑자기 그 반대로 힘이 샘솟는 게 아닌가. 그래, 야생마를 타고 질주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어. 말은 힘이 넘쳐 주인을 시험하려 들지만 기수는 이미 이 미천한 짐승을 어떻게 다룰지 알고 있던 걸세. 그래, 친구들한테 돌아갔을 때 난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네. 과거의 내가 아니었어. 드디어 운명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물론,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내 친구였다네.(358-359p)

 

 

육십 년 전 그날 오후 아폴로니아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운명이었네. 난 운명을 피하지 않기로 다짐했지.

하지만 세상을 바꿀 운명이라면 먼저 자신부터 변해야겠지. 그 사실을 이해한 것도 지식보다 거의 본능에 가까웠네. 운명에 복종한다? 그럼 무엇보다 자신과 타인, 심지어 내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세상에 무관심할 수 있어야 하네. 자신의 내면에서 단호하고 은밀한 본성을 찾거나,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해. 물론 지금의 욕망은 물론, 개조하는 동안 발견하게 될 본성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야 할 걸세.

그들은 내 친구였네. 더욱이 그들을 포기해야 하는 그 순간에조차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지. 인간이란 얼마나 모순된 동물인지. 가장 아끼는 대상을 거부하거나 단념해야 하다니! 군인은 직업으로 전쟁을 선택하면서 평화를 갈망하고, 태평성대에는 검이 부딪는 소리와 전장의 혼란과 피비린내를 그리워한다네. 노예 또한 타고난 굴레가 싫어 돈을 주고 자유를 사들여놓고 결국 전주인보다 더 가혹하고 악랄한 주인한테 묶이지. 심지어 애인을 차버린 다음 그 애인을 이상화해놓고 꿈속에서조차 그리워한다지 않던가.

물론 나 자신도 이런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다네. 어렸을 때라면 고독과 비밀이 운명적이라고 말했을 걸세, 글쎄, 터무니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때 내 삶을 선택했네. 막연하나마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운명을 꿈꾸며 그 꿈속에 살기로 결심하고, 대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가능성을 버린 거야. 너무도 당연해서 거론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아무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식의 인간관계 말일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고민하지 않네. 그보다 그 결과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지. 나 역시 결정의 결과를 가슴속에 품고 사네만, 그 상실감의 무게가 이렇게 클지는 예상하지 못했어.(360-361p)

 

 

경기장에서 막사로 돌아온 뒤 검투사의 모습을 본 적이 있네. 땀과 먼지와 피를 뒤집어썼건만 오히려 사소한 일에 여자처럼 흐느껴 울더군. 그러니까 기르던 매가 죽거나 애인의 절교편지를 받거나, 아끼는 외투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말일세. 귀부인들의 모습도 가관이긴 마찬가지였지. 불운한 검투사를 죽이라고 소리칠 때는 얼굴까지 흉측하게 일그러뜨리면서, 집에 돌아가서는 더없이 정숙한 척 아이들을 돌보고 하인들에게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더군.(371p)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의미가 없어질수록 세월을 버텨낸 힘에 대해서까지 점점 회의가 든다네. 인간이야 운명을 향해 발버둥친다지만 신들은 분명 그런 미천한 존재들한테 관심조차 없다네. 신탁도 모호하기 짝이 없기에 결국 그 예언도 직접 뜻을 헤아려야 하지. 사제 노릇을 할 때도 난 짐승 수백 두를 잡아 내장과 간을 실험했고, 그 결과 설령 신들이 실존한다 해도 인간사에 개의치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네. 그래서 내가 사람들한테 로마의 고대 신을 따르라 부추겼다면 그건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필요 때문이었다네. 그런 힘 따위는 오히려 개개인에게 넘쳐나네···. 그래, 친애하는 니콜라우스, 어쩌면 결국 자네 말이 맞겠어. 신이란 단 하나밖에 없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네는 그 신 이름을 잘못 지었네. 신의 이름은 우연이고 사제는 분명 사람일 거야. 당연히 사제의 유일한 제물 또한 자기 자신이겠지. 자신의 분열된 자아.(382-383p)

 

 

내 생각은 이렇다네. 누구나 살다보면,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있을 걸세. 이해 못 할 수도 있고 형설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네. 아무리 초라하다 해도 본질을 넘어선 그 누구도 되지 못해.(384p)

 

 

 

ㅡ 존 윌리엄스, <아우구스투스> 中, 구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