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류진운, <닭털 같은 나날> 中, 소나무

mediokrity 2019. 4. 20. 01:59

2019/4/20

 

치사하고 찌질한 우리네 이야기. 중국 소설은 아직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루쉰도 그렇고 위화도 그렇고 어느 정도 비슷한 중국의 정서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든가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항상 같이 있는 것이다.(20p)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둘 다 성취욕도 강했다. 서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밤에는 등불을 밝혀 공부했고, 웅대한 이상도 갖고 있었다. 관공서의 처장이나 국장, 또는 사회의 크고 작은 기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얼굴을 한 군중의 새까만 대열 속에 빠져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당신도 두부를 사고 출퇴근을 하고, 밥 먹고 잠자며, 빨래를 하고 가정부까지 다루고, 아이를 돌보다 보면, 저녁이 되어도 책 한 장 뒤적이고 싶지 않게 되고, 웅장한 꿈이나 이상이라는 것은 개방귀 같은 소리고 철없던 때의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모두들 이렇게 섞여서 한 평생 사는 것이 아닌가? 큰 뜻이 있으면 어쩔 거고, 설사 꿈이 있다면 또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 많던 장군과 재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두 황폐한 무덤의 풀숲 아래에 있을 뿐이다. 한 세대만 지나면, 누가 누굴 알겠는가?

(...)

도리어 참을 수 없는 것은 ‘두부 상하는 것’ 같은 일상의 작은 일들이다.(21-22p)

 

 

그는 예전에는 축구를 무척 좋아했다. 축구를 보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뛰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의 이름도 모두 꿰고 있었다. 그때는 축구를 보는 것이 인생의 제일 큰 목적인 것 같았다.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인데, 인생에 4년이 몇 번이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중에 직장을 갖고 결혼하자, 점점 축구를 보지 않게 됐다. 축구를 본다고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남이 아무리 공을 잘 차도, 자기 자신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의 문제는 집, 아이, 연탄, 가정부, 그리고 고향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소란스런 세상에 대해,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85p)

 

 

그가 정부 기관에서 5~6년을 보냈는데, 관공서의 수법을 모를 리 없었다. 일은 처리하기 쉽다고 말하면 쉽다. 내일 그가 팽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그녀가 루즈 칠할 시간이면 그 문건을 그녀의 손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 처리하기 어렵다고 말하면 어렵다. 만약 낯선 사람이 공식적으로 팽을 찾아가거나, 팽이 기공을 하고 있는데 그녀를 귀찮게 하거나, 혹은 다른 일로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이 문건은 처리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이 문건의 온갖 문제점을 다 찾아내고, 국가의 각종 규정과 심사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상대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그 문건 자체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88-89p)

 

 

왕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장을 괜찮은 친구로 생각했는데, 막상 결정적인 때가 되자 다르게 행동했다. 모두 당신더러 지모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했지만, 정작 당신은 친구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전에 무엇 때문에 그와 함께 원 국장을 반대했느냐? 적이라는 원 국장은 오히려 병문안을 왔는데, 당신의 옛 친구는 왜 그림자도 보이지 않느냐? 아내에게 이런 말까지 듣자, 왕은 침대를 치면서 연신 한탄했다.

바로 그때, 부국장 방이 과일 바구니와 통조림 그리고 분유를 들고 온 것이다. 왕은 좀 놀랐다. 방 역시 자기와 적대 관계가 아니었던가? 도대체가 결정적인 때가 되자 친구는 오지 않고, 적들이 온단 말인가? 세상의 이치야말로 참으로 복잡한 것이다. 혁명의 대열은 정말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대립하는 양쪽 진영조차 도무지 분명하지 않으니 말이다. 적군 속에 아군이 있고, 아군 속에 적군이 있는 것이다.(122-123p)

 

 

그 가운데서 가장 웃기는 사람은 류였다. 류는 이미 예순넷이라 은퇴를 4년이나 넘긴 상태이므로, 이번에 누가 권력을 잡든 반드시 퇴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감은 여전히 퇴임하기 싫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그는 여론조사를 한다는 소식을 남들보다 하루 먼저 알았다. 그래서 사방으로 직원들을 찾아가 활동을 했다. 그는 내일 여론조사를 하니 이번에 모두 자기 이름을 적기 바라며, 국장으로 적어도 되고 부국장으로 적어도 된다고 암시했다. 그는 표를 얻기 위해 얼굴에 웃음을 띠며, 기관에 막 들어온 스무 살 먹은 대학생에게도 ‘형님’ ‘아우’ 소리를 해서, 사람들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했다.(179-180p)

 

 

자넨 아직도 그걸 모른단 말인가? 내가 보기엔 그 대머리가 합당하게 처리한 걸세. 지난달까지 자네가 누구였나? 국가 기관의 상무 부국장이었다구! 그때만 해도 자네는 대머리에게 쓸모가 있었지. 그래서 자네를 필요로 한 거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자네는 이제 국장도 아니고 발령이나 기다리는, 한마디로 사회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구! 대머리에겐 자네가 필요 없어진 거지. 그가 왜 자네를 보살펴야 하는가? 자네가 그 대머리에게 다시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꾹 참고 있다가 다른 국의 국장이 되어야 하네. 그러면 자네에 대한 대머리의 태도도 분명히 다시 변할 것이네.(194p)

 

 

ㅡ 류진운, <닭털 같은 나날> 中,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