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례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열린책들

mediokrity 2019. 5. 1. 10:22

2019/5/1

 

 

 

제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저 스스로 일신의 안녕을 챙겨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과 그의 처의 마음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저를 불쌍히 여기고 아껴주었기 때문입니다. 고아들이 살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스스로를 챙겨서가 아니라 완전히 남인 여인의 마음에 사랑이 있고,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챙겨서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사랑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

하느님은 사람들이 개인으로 살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 주시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를 원하시기에 하느님은 그들 모두에게 공동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 주시는 겁니다.(252p)

 

 

까사쯔끼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1840년대 인물 유형에 속했다. 즉 자기 자신에게는 부도덕한 이성 관계를 의식적으로 허용하고 마음속으로도 비난하지 않는 반면 아내에게는 이상적이고 천사 같은 순결을 요구하며, 자신이 속한 사회 계층의 모든 여자가 그러한 최고의 순결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고 그들을 그렇게 대했다. 그런 시각에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방탕함을 허용하고 조장하는 그릇되고 유해한 요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자와의 관계를 보자면 그런 시각(여자를 짝을 찾는 암컷이라고 보는 요즘 젊은이들의 시각과는 확연히 다른)은 유익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한 신격화를 접하면 처녀들은 여신이 되려고 어느 정도 노력하는 법이다.(329p)

 

사람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대하자. 신격화도 뭐도 좀 하지 말고.

 

 

기분이 괜찮을 때는 그런 생각이 괴롭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 회상을 하면 그는 그 유혹이 뿌리쳤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러나 문득 삶이 어둡게 느껴질 때면 자신이 믿게 된 원칙에 대한 확신을 잃고 기억에 사로잡혀, 말하기도 끔찍하지만, 삶의 방향을 튼 것을 후회하는 것이었다.(335p)

 

 

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고독에서 떼어 놓을 때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제 그는 고독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에 치이고 그들 때문에 지쳤지만 영혼 깊은 곳에서는 그들이 찾아오는 걸 기뻐하고 자신을 에워싼 찬사를 즐기고 있었다.(361p)

 

 

난 대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소. <분명히 내가 모르는 뭔가를 대령은 알고 있는 거야. 그가 아는 걸 나도 안다면 내가 본 걸 납득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광경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할 일도 없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령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난 이해가 되지 않았소.

(...)

자, 여러분은 내가 그때 본 게 추악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오? 전혀 그렇지 않소. <그 일을 그처럼 확신에 차서 실행했다면, 그리고 모두가 불가피한 일이라고 인정했다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한 바였고, 난 그걸 알아내려고 노력했다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때나 그 이후에도 알아낼 수가 없었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안 되니 군대에서 복무할 수가 없었소. 그 전까지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말이오. 그리고 군대만이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하지 못했고, 그러니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오.(406p)

 

 

 

ㅡ 례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