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김혼비, <아무튼, 술> 中, 제철소

mediokrity 2019. 5. 9. 23:20

2019/5/9

 

몇몇의 언어유희는 조금 과했지만 근자에 읽을 책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낄낄거리며 웃기다가도 어느새 감동을 주는 부러운 글 솜씨다. 읽고만 있어도 술 생각이 절로 나도록 하는 책이라 집에서 혼술 했음 ㅋㅋ

 

 

 

나에게는 어떤 대상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하면 그 마음이 감당이 잘 안 돼서 살짝 딴청을 피우는, 그리 좋다고는 하지 못할 습관이 있다. 말도 안 되게 좋아하다 보면 지나치게 진지해지고 끈적해지는 마음이 겸연쩍어 애써 별것 아닌 척한다. 정성을 다해 그리던 그림을 누가 관심 가지고 살펴보면 괜히 아무 색깔 크레파스나 들어 그림 위에 회오리 모양의 낙서를 마구 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만들던 여섯 살 적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말도 안 되게 좋아하는 걸 말이 되게 해보려고 이런저런 갖다 붙일 이유들을 뒤적이기도 한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 수 있게.(13-14p)

 

 

그는 예상보다 훨씬 좋은 술 친구였다. 정치적 성향과 세계관이 비슷했고, 무엇보다 유머 코드가 잘 맞았다. 사실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비슷하다는 건, 이미 정치적 성향과 세계관이 비슷하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무엇을 유머의 소재로 고르는지 혹은 고르지 않는지(후자가 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걸 그려내는 방식의 기저에 깔린 정서가 무엇인지는 많은 것을 말해주니까.(77p)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몇 시간 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딘가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 없다. 그런 점에서 홍콩을 닫고 술친구를 열어젖힌 나의 선택은 내 생애 최고로 술꾼다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내 생애 최고로 술꾼다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당장 눈앞의 즐거운 저녁을 위해 기꺼이 내일의 숙취를 선택하는 것과도 닮았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는 마음에 드니까.(90p)

 

 

그날 이후 몇 달 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어쩐지 나는 좀 힘을 내기 시작했다. 당장에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너지기 직전의 다리를 가까스로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힘내라는 말과 그 비슷한 종류의 말들을 더 이상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런 힘이 없어 누군가의 귀에 가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툭 떨어지는 말일지라도, 때로는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쉬운 말 밖에 없을지라도, 이런 쉬운 말이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 가닿기를, 언젠가 쉬워지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소망이 단단하게 박제된 말은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바닥에라도 굴러다니고 있으면 나중에 필요한 순간 주워 담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언젠가 힘을 내야만 하니까. 살아가려면.(61-62p)

 

 

그래서 우리는 재작년부터 ① 가급적 평일에는 마시지 말 것, ② 마시더라도 새벽 1시 전에는 끝낼 것, ③ 마시더라도 (1인당) 소주 한 병/맥주 세 병/와인 한 병/위스키나 보드카 넉 잔을 넘기지 말 것(/ 표시는 ‘or’이다. ‘and’가 아니니 착오 없길 바란다···) ④ 마시더라도 괜찮은 안주를 곁들여 마실 것, 이라는 규칙을 정했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 거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를 규칙이다···. 게다가 ‘마시더라도’에 해당하는 상황이 지나치게 세분화 되었다는 점에서 결국 마시게 될 거라는 패배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가급적’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하지 말라’는 말을 꾸며주는 척하지만 슬그머니 ‘해도 된다’의 편도 들어주니 말이다.(93p)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이건 바로 내가 술집에 들어갈 때마다 겪는 딜레마다. 특히 음주를 시작하기 애매하디애매한 함정 같은 시간에, 환희의 극치일까, 고통의 극치일까, 가는 기차는 천국행이고 돌아오는 기차는 지옥행일 이상한 왕복 기차권을 끊을지 말지, 그냥 얌전히(?) 걸을지 오늘도 목하 고민 중이다.(100p)

 

 

지난주는 요가의 완패이자 나의 완패였다. 전어회가 제철이라, 막장과 마늘을 살짝 올린 기름진 전어에 소주를 마시느라고, 아버지가 담가준 김치가 막판이라, T가 신김치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 스팸과 집에 있는 모든 야채를 다 넣고 볶은 뒤 흰자는 튀기듯이 바삭하게 노른자를 톡 치면 흘러내리게 익힌 달걀프라이를 얹어 내온 김치볶음밥에 소주를 마시느라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날 으슬으슬한 게 오뎅 바가 제격이라, 무가 적당히 우려진 국물에 담겨 푹 익기 직전의 오뎅 꼬치를 쏙쏙 빼어 먹으며 온 사케를 마시느라고, 외근이 끝나니 광장시장 근처라, 빈대떡과 고기완잔에 막걸리 두 병을 비우고 두 번째 시킬 때 넉넉히 담아 주셔서 아직도 많이 남은 큼직큼직 썬 양파를 툭툭 넣은 간장만으로 막걸리 한 병을 더 비우느라고, 금요일이라, 매주 듣는 강의가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자카야에 들어가 내가 굴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 바삭한 굴튀김과 어떻게 해 먹어도 기본은 가는 가라아게에 하이볼을 마시느라고.

이게 지난주의 전적이다. 주말에 마신 와인은 쓰지 않겠다. 사이사이 마신 맥주는 아예 써주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지지난주라고 뭐가 달랐을까? 답하지 않겠다···.

솔직히 이번 주도 완패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오늘은 요가가 술을 이겼다. 무려 홍어회를 이겨내고 요가를 다녀온 것이다! 갑자기 강철 의지력이 생겨났을 리는 없고 어제 이미 질릴 정도로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역시 ‘오늘의 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건 그나마도 ‘어제 마신 술’밖에 없다.

앞으로도 퇴근길마다 뻗쳐오는 유혹을 이겨내고 술을 안 마시기 위해서라도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다.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도 마신다.(103-104p)

 

 

테이크가 거듭될수록 선배는 우리가 더 앙칼지게 고함을 쳐주기를 바랐다. 사전 의논 때는 요구하지 않았던 쌍욕도 마구 섞어보기를 바랐다. 여자들이라고 업신여기다 혼쭐이 나는, 얌전해 보였던 여자들이 사실은 싸움꾼이었다는, ‘전복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전복이라··· 이런 사소한 시비에서 전복 같은 걸 이루려면 여자들이 남자 차를 뒤집어버리는, 말 그대로 차를 전복시키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는 차를 뒤집지 않았다. 대신 감독의 속을 뒤집었다.(110p)

 

 

한때는 두 달에 한 번은 만났던 넷이서 다 같이 모이기까지 2년이 걸렸다. 주인이 직접 빚고 발효시키는 수제 막걸리집에서 만났다. 네 종류의 막걸리가 피처에 담겨 나오는데 계절의 이름을 따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했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2년을 상쇄하자는 뜻에서 사계절을 두 바퀴 돌아 여덟 피처를 마시기로 다짐하고 시작했건만, 여섯 번째 피처에서 실패했다. 모두 이제 주량도, 상황도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함께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모두가 “가을, 겨울도 다 마셨어야 했는데!”라며 계속,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해가면서 아쉬워했던 것은, 이 가게를 나가는 순간, 함께하지 못할 더 많은 계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서 애써 고개를 돌리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121-122p)

 

 

향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맛있는 와인 맛’, 딱 그거겠지). 하지만 첫 모금을 입에 머금는 순간, 나는 나의 시간에 어떤 선이 그어지는 것 같은 선명한 기분을 느꼈다. 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선.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실 때마다 와인에 완전히 혀를 붙들리는 바람에 말을 잃어갔고, 붙들린 혀에서는 둔한 감각을 찢고 들어온 핏빛 액체에 놀란 1만 개의 미뢰가 번쩍번쩍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맛이 주는 충격이었다. 아무리 기분 좋은 감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충격’이라고 부를 만한 강도를 갖고 있다면 어느 정도는 난폭할 수밖에 없어서,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페트뤼스에 그동안 마셔왔던 와인의 기억들이 조금씩 부서지고 깎여나갔다. 나는 그 맛과, 내 몸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의 감각을 최대한 느끼고 싶어서 한동안 조용히 와인만 마셨다.(131p)

 

 

그날 나는 처음으로 취향의 확장과 감당의 깜냥에 관해 생각했다. 그동안 돈이 많이 나가는 취미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던 데다가, 취향이라는 것은 경험, 사유, 지식, 능력, 근육량과 함께 확장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나에게는 새로운 종류의 고민이었다.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 취향의 세계에서 지속적 만족을 얻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지속적 만족이 불가능하다면 그 반작용으로 생길 지속적 결핍감에 대처할 수 있는가. 취향 확장비(혹은 유지비)를 나의 노동력과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가. 취향 확장비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과 비교했을 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확실한가.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너는 취향의 확장을 감당할 깜냥이 되는가!

취향의 확장과 함께 넓어지는 세계. 멋진 말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그게 와인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돈으로 결코 환산할 수 없는 충만한 기쁨과 소중한 기억들을 안겨줄 테고, 그건 분명 멋진 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멋짐을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는 사람에 나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대개의 취향은 돈을 먹고 자란다. 그 때문에 어떤 취향의 세계가 막 넓어지려는 순간 그 초입에 잠시 멈춰 서서 넓어질 평수를 계산하고 예산을 미리 짜보지 않고서는 성큼 걸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확장공사 다 해놨는데 잔금 치를 돈이 없으면 그때 가서는 어떡해? 그 돈으로 다른 좋은 걸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깊이 고민한 끝에 나는 초입에서 돌아 나오기로 결정했다. 계속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134-135p)

 

 

무엇보다 만취 상태로 곧바로 건너뛰기에는, 술 동무와 함께 서서히 취기에 젖어드는 과정이 주는 매력을 무시할 수 없다. 때로는 이게 내가 술을 좋아하는 이유의 전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을 백지에 쓱쓱쓱쓱 계속 문지르다 보면 연필심이 점점 동글동글 뭉툭해지는 것처럼, 어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그 밖의 대외적 자아로서 바짝 벼려져 있던 사람들이 술을 한 잔 두 잔 세 잔 마시면서 조금씩 동글동글 뭉툭해져가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술이 우리를 조금씩 허술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래서 평소라면 잘 하지 못했을 말을 술술 하는 순간도 좋다.(165-166p)

 

 

ㅡ 김혼비, <아무튼, 술> 中, 제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