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中, 21세기북스
2019/5/21
평균의 시대를 특징짓는 2가지 가정은 평균이 이상적인 것이며 개개인은 오류라는 케틀레의 신념과 한 가지 일에 탁월한 사람은 대다수의 일에서 탁월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골턴의 신념이다. 저자는 이 평균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평균은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값이기 때문이다. 대신 개개인을 중심에 놓고 분석하여 의미 있는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기를 권하며, 기존 시스템의 평균주의 구조에서 학생 개개인을 중요시하는 시스템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개념을 3가지 제시한다.
1.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2. 성적 대신 실력의 평가
3.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 허용하기
참 좋은 말이지만 그렇게 좋은 대안인지는 의문이다. 각 항목에 대해 내 나름의 이유를 들어보면 좋을 텐데 번거롭고 귀찮다.
평균의 시대를 특징짓는 2가지 가정은 무엇인가? 평균이 이상적인 것이며 개개인은 오류라는 케틀레의 신념과 한 가지 일에 탁월한 사람은 대다수의 일에서 탁월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골턴의 신념이다. 그러면 이번엔 개개인의 과학이 내세우는 주된 가정은 뭘까? 개개인성이 중요하다는 신념이다. 즉 개개인은 오류가 아니며 개개인을 (재능, 지능, 인성, 성격 같은) 가장 중시되는 인간 자질에 따라 단 하나의 점수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107-108p)
성격심리학자들이 생각하기에 쇼다의 결론대로라면 인간의 성격에는 일관적인 면이 없으며 인간의 행동은 소용돌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해서 그때그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변한다고 암시하는 것이었다. 또 성격론자들로선 특성이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면 모델을 세울 기반이 흔들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쇼다는 성격의 개념을 폄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과 맥락을 결합시킴으로써 성격론에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사실 쇼다는 우리 인간의 정체성에는 어느 정도의 일관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다만, 그것이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그런 일관성이 아닌 특정 맥락 내에서의 일관성일 뿐이었다. 쇼다의 결론에 따르면 당신이 오늘 운전하는 동안 신경과민일 정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면 내일 운전을 할 때도 신경과민일 정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이 아주 확실하다. 한편 당신은 일관적이지 않은 모습의 당신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인근 호프집이라는 맥락에서 같은 밴드 멤버들과 비틀스의 리메이크 곡을 연주할 때는 신경과민일 정도로 조심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식이다.(157-158p)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성품은 뼛속 깊이 뿌리박힌 천성이라는 것이 통설로 굳어져왔다. 예를 들어 이웃집 아들이 동네 편의점에서 사탕을 몰래 훔치려다 들켰다는 얘기를 들으면 본능적으로 그 아이가 다른 물건을 또 훔칠 것이라고 넘겨짚는다. 그 아이가 집에 놀러 오면 아이 혼자만 두고 자리를 뜨기가 꺼려지기 십상이다. 심지어 그 아이에게 도덕성의 결함이 있다고 여기면서 앞으로 또 도둑질을 할 것이 뻔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부정행위를 하고 어른에게 거짓말을 하는 등 다른 비도덕적인 짓도 얼마든지 벌일 만한 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성품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다를 게 없다. 즉 맥락과 분리시킨 채로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봐야 헛소리일 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감력, 존경심, 자제력 같은 도덕성을 어떻게 심어주느냐를 놓고 여전히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시대에, 또 전적으로 성실하거나 전적으로 불성실한 사람도 있다고 믿는 시대에 이런 중요한 도덕적 자질 모두가 아주 개별화된 상황 맥락별 기질에 따라 특징지어진다는 개념은 도발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품이 맥락적이라는 이런 개념은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163p)
다른 사람의 성격이 고정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와는 다르다. 즉 우리는 대다수 사람들과 한정된 범위의 맥락 내에서만 상호 교류를 나누는 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동료와는 직장 내에서만 알고 지낼 뿐, 집에 놀러 가 그 동료의 가족들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닐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친구와는 주말마다 쇼핑하고 술을 마시지만 회의실에서 만나 함께 회의할 일은 없는 사이일 수도 있다. 자녀들과는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학교에서 보거나 자녀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경우는 드물기 십상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특성처럼 느끼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당신이 그 사람들의 맥락에서 일부분만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직장 상사가 옆에 있을 때에만 소심해지는 것뿐인데 직장 상사는 당신을 소심한 사람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한편 당신은 직장 상사가 고압적이고 오만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사는 당신이 주위에 있을 때만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아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다양한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이들의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탓에 제한된 정보를 기반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한다.(176-177p)
타인의 상황 맥락별 기질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특히 더 중요한 경우는 타인이 잘하도록 돕는 역할이 주어질 때, 즉 관리자, 학부모, 상담가, 교사 등등의 역할을 맡게 될 때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따지는 대신 맥락의 관점에 따라 ‘저런 맥락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또한 자신이 판단할 때 좋지 않게 생각되는 행동을 보면 잠시 반응을 보류하며 먼저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를 찾아볼 수도 있다. 아니면 셀레스트 키드의 모범을 따라볼 수도 있다. 키드는 무지막하거나 분별없게 여겨지는 행동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게 될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며 그 행동이 지각 있고 분별 있게 느껴질 만한 상황들을 상상해보려 애쓴다. 그러면 대체로 상대편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맥락을 그 상대편에게 투영하려고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
그 사람에게는 당신과 그 사람 둘이 함께 놓여 있는 그 순간의 맥락만이 전부가 아님을 명심한다면 마음의 문이 열려 본질주의 사고로는 어림없는 수준의 넓은 도량으로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178-180p)
인간의 발달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이 없으며 이 사실은 개개인성의 세 번째 원칙인 경로의 원칙에서 근본을 이루는 토대다.
(...)
즉 개개인은 들쭉날쭉의 원칙과 맥락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진전의 속도와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순서가 다양하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190p)
우리는 흔히 어떤 특정 목표에 이르는 경로는 저 밖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걸어갔던 여행자들이 닦아놓은 숲속의 보행로 같은 경로가 있다고 여기며 삶에서 성공하는 최선의 길은 그런 잘 닦인 보행로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로의 원칙은 우리에게 다른 얘기를 전해준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자신만의 경로를 처음으로 내고 그 길을 닦으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나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따라 매번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능성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203-204p)
ㅡ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中,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