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앤드루 산텔라, <미루기의 천재들> 中, 어크로스
2019/5/27
미루기에 대한 각종 사례와 분석도 재밌었지만 부수적으로 박혀있는 유머가 더 눈에 띤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기 불구화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주저앉히는 방식을 뜻한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뭐든 간에 그 일에 실패하는 게 두려워서일 수도 있고 성공하는 게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자기 불구화 전력으로서 일을 미루는 사람은 일이 자기 능력을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미룬다. 이들은 그저 두려움 때문에 마비되어 있는 게 아니다. 미루는 행동이 이들을 실패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건 열심히 달려들지 않았기 때문이고,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순간까지 기다렸기 때문이고, ‘될 대로 되라’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미루는 행동은 이들에게 실패의 원인인 동시에 실패에 대한 변명이 된다.(54-55p)
혹시 미루기 연구자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도록 불을 붙이고 싶다면, 만성적인 미루기가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는 무능함과 더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감정 조절 실패와 더 관련이 있는지만 슬쩍 물어보면 된다.
페라리는 후자를 지지한다. “만성적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에게 ‘그냥 하라’라고 말하는 건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이봐, 기운 내!’하는 것과 같습니다.”(57p)
티머시 피칠은 기분이 행동을 좌우하게 놔두지 말고, 대신 행동이 기분을 좌우한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여태껏 미뤄왔던 일을 하면 기분이 나아진다. 실제로 미뤄왔던 일을 하는 건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미뤄왔던 일이라는 게 내가 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바로 그 일이기도 하다는 거다.
내 패턴은 보통 이렇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내게 정말 간절히 필요한 건 방금 내린 커피 한 주전자라는 결론을 내린다. 커피를 내리려면 부엌으로 가야 한다. 일단 부엌에 가면 싱크대 위의 전구가 나갔다는 걸 알아채지 않을 수 없다. 전구를 갈려면 모퉁이에 있는 가게에 가야 한다. 그러나 새 전구를 사러 모퉁이까지 걸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구를 파는 가게는 정말 훌륭한 베이글을 파는 가게 바로 옆에 있고, 커피를 내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베이글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반박이 어렵다. 또한 전구 가게와 베이글 가게가 있는 바로 그 블록에는 선집을 훑어보며 약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점이 있다. 그래, 서점이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59-60p)
일을 미루는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일을 미루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연히 실패하리라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실패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일을 미루는 핑계꾼이거나.
아니면, 내가 해낸 일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가 무서워서 일을 미룬다거나.
아니면, 특정 날짜까지 뭔가를 하라고 요구하는 상사나 배우자나 카드회사나 다른 권위자에게 고분고분 대응해야 하는 게 분해서라거나.
아니면, 최후의 순간에 일을 끝내려고 애쓸 때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게 즐겁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해야 할 일의 규모와 가짓수에 압도당해서거나.
아니면, 그냥 너무 귀찮아서일 수도.
더 복잡한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직업적 의무라는 측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지만 집안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굼뜬 경우일 수도 있다.
(...)
사실, 내가 알게 된 설명 하나하나는 전부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심리학자 피어스 스틸은, 이 모든 미루기의 핵심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선호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일을 미루는 것은 대개 현재는 구체적으로, 미래는 추상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61-62p)
우리는 지금 일할 것이다. 아아, 하지만 너무 늦었다.(71p)
모두가 가끔은 이런 설명 불가능한 늑장에 푹 빠져버리고 만다.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 잘 안다고 생각할 때조차 우리 안의 무언가가 그걸 방해한다.(83p)
내 낙관주의는 아침에 일어난 직후 거의 정점을 찍는다. 나는 늘 아침을 사랑해왔다. 아침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연민과 심술이 덜하다. 아침에는 모든 게 가능해 보인다. 아이디어로 넘쳐흐른다! 가능성! 타인을 향한 사랑! 아무도 나를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오후 4시쯤 되면 나 자신과 인류에 대한 기대를 깨끗이 단념한다. 그렇게 미루기는 늦은 오후에 정점을 찍는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하루를 내려놓고 모든 걸 내일로 미루는 시간. 그때쯤 되면 예외 없이 현재에서 빠져나와 내일 아침을 위해 산다.(91-92p)
어느 날 한 신부가 신도들에게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한 사람을 빼고 모두가 손을 들었다. 신도들을 바라보던 신부는 손을 들지 않은 사람에게 정말 천국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신부님, 물론 천국에 가고 싶지요. 하지만 신부님께서 오늘 당장 보내버리려고 하시는 것 같아서요.”
(...)
우리에게는 가장 완벽한 상황에도 저항하고자 하는 타고난 양가감정이 있다.
천국은 좋은 곳 같아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93-94p)
그러는 사이 마감은 다가왔고, 나는 점점 더 깊은 구덩이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텅 빈 구덩이로 떨어지며 당장 해야 하는 일에서 필사적으로 멀어져갔다. 갑자기 트위터 프로필 업데이트야말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무처럼 보였다. 그동안 수집한 디지털 음원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일을 ‘큐레이팅’이라고 하던데.(100p)
내게, 그리고 장담하건대 모든 미루기 장인들에게, 투두 리스트는 일을 미루면서 더 큰 만족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데 그 존재 가치가 있다. 지금 미루고 있는 일의 리스트를 먼저 작성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할 텐데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101p)
일을 미루는 사람으로서, 나는 게으름을 피우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먼저 내키는 대로 책도 한 권 더 읽고, 콜트레인 음반도 듣고, 샤워도 하고, 공원도 산책한다. 이 모든 건 ‘글쓰기’라는 항목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나는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글을 쓰고 있는 거야. 때가 되면 ‘글쓰기’를 멈추고 진짜 글을 쓰기 시작할 거야.(107p)
무언가를 미룬다는 것이 자신의 이익과 상반되는 행동을 하는(또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일부러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겠는가? 고대 그리스에는 이런 행동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었다(당연하다, 그리스인에겐 없는 게 없다). 그 단어는 아크라시아로, 고의로 자신의 판단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아크라시아는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유익한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러 나쁜 쪽을 향해 가는 사람은 없다”라고 소크라테스는 주장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크라시아가 정확하게는 자제력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욕구나 욕정이 이성을 넘어서는 상황. 나는 진심으로 탄탄한 몸매를 원하지만 내 몸매는 탄탄하지 않다. 운동하는 대신 인터넷으로 영화 <탈레디가 나이츠>를 보며 솔티드 캐러멜 하겐다즈를 한 통 다 퍼먹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하겐다즈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건강은 잃는다. 나는 내게 가장 유익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리 유익하지 않은 동물적 욕망을 채우는 데 열심히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크라시아를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엉뚱한 사람과의 하룻밤, 술집에서 다 보내버린 오후, 솔티드 캐러멜 아이스크림 한 통을 떠올려보라. 우리는 건강하지 않다는 걸,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고는 후회한다. 그런 다음엔 스스로 인간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며 “돼지처럼 먹었어” 라거나 “나는 똥멍청이야”라고 말한다. 이런 유해한 행동의 결과로 몸에 탈이 나기도 한다.(112-113p)
내 작업 습관을 개선시키려는 노력 차원에서 로라는 컴퓨터가 30분마다 시간을 알려주게끔 설정해두었다. 컴퓨터는 스티븐 호킹이 사용한 기계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2시입니다.” 가짜 스티븐 호킹이 시간을 공표하고 몇 분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온라인으로 사랑스러운 코기 사진 좀 봤을 뿐인데, 가짜 스티븐 호킹이 또다시 시간을 공표했다. “2시 30분입니다.” 컴퓨터가 시간을 선언하며 내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또 하루가 사라져감. 넌 망하는 중.”(137-138p)
리히텐베르크는 열심히 일했지만 절대로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는 성취 자체를 싫어했다기보다는 특정 방식으로 이룬 성취만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지적인 면에서 스프레차투라, 그러니까 어려운 것을 쉽게 해낸 듯이 보이는 능력을 추구했다. 본인의 노고를 드러내는 건 무성의해 보이는 효과를 망칠 뿐이다.(152p)
주방 직원들도 이 개를 잘 알고 있는 듯, 한명씩 나와서 개를 쓰다듬어주거나 놀아주고 개 얼굴에 코를 마구 비볐다. 다들 꽤나 귀여웠다. 물론 손으로 개털을 만지던 이 사람들이 내 다음 코스 요리를 만들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개털은 음식을 더욱 맛있게 만들 뿐이다.(160p)
꾸물거리기와 미루기, 주저하기는 전부 창의적인 과정의 한 단계다. 데일은 한 가지 일을 미루면 종종 다른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던 그 두 번째 일이 결국은 꼭 해야 했던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일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런 의미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잘 보면, 미루는 행동은 적극적인 성취의 매개물일 수 있다.(166-167p)
“게을러질 수밖에 없는 그날들이 사실은 정말 심오한 활동을 하고 있는 때인 건 아닌지, 나는 종종 되묻게 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보면 사실 위대한 도약의 마지막 잔향일 뿐이고, 위대한 도약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시기에 발생하는 게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모든 미루기 전문가가 배우고 익혀야 할 마법 같은 생각이다.(171-172p)
어떤 일을 하기 직전의 상태는 곧 끝없는 과정과도 같다. 가능성은 절대로 소진되지 않는다. 어떠한 과정의 시작은 가장 힘겨운 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희망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처음이야말로 우리가 한없는 잠재력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
작가는 실패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오래도록 글을 붙잡고 마무리하지 않는 한 굉장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가능하다.(175-176p)
라이트가 최후의 순간이 되어서야 설계안을 종이에 옮기긴 했지만 아마 아이디어는 그전부터 쭉 흘러나오고 있었으리라고 주장했다. 머릿속에 이미 디자인이 완성되어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놀랍게도 바로 내가 소파에서 눈을 붙일 때 와이프에게 하는 말과 꼭 같다. 내가 지금 낮잠 자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글을 쓰고 있는 거야. 난 언제나 글을 쓰고 있다고.(199p)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다소 자기애가 과한 설명이다. 마치 탁월한 지적 능력이 주인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여서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일 미루는 사람의 진짜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하지 않는가. 망설임은 사고의 방향이 행동에서 무위 쪽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충분히 오래 생각해보라. 그러면 대개 그 일을 꼭 할 필요는 없게 된다.(209p)
다운하우스의 수석 정원사인 로언 블레이크는 다운하우스 부지에 머물며 다윈이 생전에 사랑했던 나무와 산울타리와 잔디를 손질한다. 로언이 이런 생활에 대해 들려주었을 때 나는 꽤나 로맨틱한 삶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실제로 허리를 굽히고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정원은 남의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221p)
당연히 나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미 후회 머신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분히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살아간다면 100퍼센트 만족스러운 상태로 죽을 수 있다고 믿는가? 나는 결코 스스로 원하는 만큼 완벽할 수 없을 것이고, 스스로 원하는 만큼 끝내주게 멋질 수도 없을 것이다. 나에겐 둘 다 필요하다. 해야 하는 일에서 도망가는 것도, 흠잡을 데 없는 착실함도. 후회도, 실천도.(226p)
ㅡ 앤드루 산텔라, <미루기의 천재들> 中, 어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