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中, 문학동네
2019/7/9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양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서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84-85p)
모든 말에는 그것과 본질적으로 무관한 사물 및 사태가, 대체로 과잉과 혼동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담보로 부여되므로, 말이 지닌 힘과 더불어 기왕에 펼쳐진 현실을 축소하고 접어 가두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압축과 생략 그리고 전복이다. 그러니 지금 눈앞의 스펙터클은 그것을 뒤집거나 달리 부르는 순간 의미가 마모되며 형태는 단순해지거나 소멸할 것이다. 호랑이는 고양이로 늑대는 강아지로.
(...)
가용 범위의 말을 줄이면 줄이는 만큼 그 말을 쓰는 존재도 쪼그라든다. 단 스무 마디의 말로 만물을 표상하고도 모자람 없던 대자연 속 인디언 부족은 오늘날 더는 남아 있지 않다. 말하지 않으면 대상을 분별했던 모든 구획과 경계가 흩어지고 말하지 않으면 존재는 망각되기를 넘어 처음부터 없었던 듯 지워질 것이다.(219-220p)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고, 그런 까닭에 누군가에게 적당히‘만’ 다가가려 노력하면서,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불행과 공포를 멀찍이 두고만 보게 되는 대도시의 사람들. 이 소설은 ‘대도시적 거리’가 조형하는 인간관계의 자유로움 이면에서 전 사회적 관심과 주의를 요하는 아이들의 삶과 그들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질 것을 요구받는 양육자의 불안이 얼마나 소홀하게 다뤄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298p)
ㅡ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