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中, 열림원

mediokrity 2019. 7. 17. 11:22

2019/7/17

 

 

 

내가 처음 당선 소식을 들은 날, 내 어머니가 전화를 받은 장소가 떠오른다. 노래방, 내 어미도 가는 곳. 한 번의 농담과 또 한 번의 농담, 그다음 번의 농담으로 삶의 품위를 지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소식이 어머니를 짓누를 때, 내 어머니가 놀러 가지 않고 살러 간 곳. 그러나 가끔은 정말 순전히 놀러만 가기도 하는 곳. 먼 옛날에는 이 세계가 전부 노래방이었겠지. 그러니 언젠가 삶의 어느 질곡에서, 노래방 한구석에서, 우연히 당신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때 당신이 조금 목말라하는 것 같다면, ‘진짜와 진 비슷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내가 사겠다.(52-53p)

 

 

서른,

기쁘게 한껏 부풀어 오르고 보니

곁에 선 부모가 바싹 쪼그라든 채 따라 웃고 있다.(124p)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나란 사람은 타인에게 냉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렇게 애쓰지 않으며 냉소와 실망 속에서 도리어 편안해질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타인을 향한 상상력이란 게 포스트잇처럼 약한 접착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해도 우리가 그걸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얇은 포스트잇의 찰나가 쌓여 두께와 무게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우리이기 전에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말들. 그리하여 나와 똑같은 무게를 지닌 타자를 상상토록 돕는 말들을 생각했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이 아니라 나와 너로 만나는, 그리하여 한 번 더 철저히 ‘개인’이 되는, 그 개인의 고유한 내면을 깊이 경험해보도록 돕는 문학의 언어를.(252-253p)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가 할 일이며, 제도를 만들고 뜯어고쳐야 하는 이들 역시 감시와 처벌 이전에 통제와 회피 이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269p)

 

 

 

ㅡ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中, 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