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中, 살림
2019/8/27
25년쯤 지난 책이라 2019년인 지금 읽기에는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문제들이 현재에도 형태만 달리하여 아직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더디 바뀐다는 생각을 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매력이 없고 납작했다. 특히 화자인 강민주는 좀 우스꽝스럽고 읽는 내가 민망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세상의 보통 사람은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결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나는 세상 그 자체를 초월해 있다. 나는 그 위에 있는 것이다.”
“나는 슈퍼마켓에서 영화배우에 대해 떠들고 있는 저런 여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존재다. 나는 결코 굳은 살 하나 없이 인생을 공짜로 살고 있는 그런 부류들과 같은 궤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신의 자식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말한 바가 있지만 나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두뇌의 소유자이다. 게다가 최근에 나는 심리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다.”
“백승하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의 가학 취미에는 어마어마한 가속력이 따라붙는다는 사실이다. 나처럼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그 상승하는 가속력을 제어하는 데 늘 당혹감을 느끼는 편인데 범상한 족속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나머지 인물들은 철저히 기능적인 역할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착과 오지랖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한남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적절한 것이다.
얼굴이 예쁜 여자들이 빠지기 쉬운 세상의 함정은 또 오죽 많은가. 그녀들이 풍겨주는 그 백치미는 또 어떤가. 평생 자신의 외모를 가꾸며 살아가도록 태어나지 않고 평생 자신의 두뇌를 의지하며 살도록 운명 지워진 것은 나는 하늘에 감사한다.(38p)
그 누구도 어떤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살뿐이다. 선각자는 있어도 지도자는 없는 것이다. 자신을 내던져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일은 존중받을 수 있으나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남을 지도하려 드는 일은 업신여김을 받아 마땅하다.(85p)
남자가, 이미 검은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남자가 ‘뜻밖에’ 회개하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다. 아니, 절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남자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면 여자의 마음에 기대보려는 것이 남자들의 속성이다.
검은 발톱은 부러진 것이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부러진 발톱은 다시 자란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특히 남자는 여자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른다. 알고 있더라도 실천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 남자란 존재들이다.(106p)
“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 아니오? 예를 들면 여자들이 경제권을 쥐고 있는 핵가족 형태의 가족 구성도 그렇소. 우리 남자들은 그동안 많이 내주었다고 보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오? 남자들이 지난날처럼 일방적으로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법적인 장치도 많이 고안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달라졌지요, 물론. 그러나 그것은 개량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보다 은밀하고 교활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여자들이 쥐고 있는 것은 경제권이 아니라 소비권 정도겠지요. 법적인 장치도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나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법은 인간의 정서를 일일이 반영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어요. 여자와 남자의 문제만큼 심정적인 것이 또 있을까요? 사회의 지배심리가 남자에게 유리하게 통용되고 있는 한은 어떤 완벽한 법도 여자들의 고통을 보상해줄 수 없는 거예요.”(211p)
남자들이란 정말 피곤한 존재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인간의 필수적인 기능조차 습득하지 못한 미개인들, 큰 일을 도모하다 결국은 작은 이익에 빠져 일을 그르치는 반란자들, 이것이 바로 남자들이란 존재의 속성이다.(222-223p)
조금만, 아주 조금만 깨어나면 되는 것이다. 어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갖춰야 할 사전 지식이나 배움도 필요없다. 단지 아주 조금만 이 세상을 바로 보면 된다. 남자가 여자의 위에 있다는 논리가 허위사실의 유포였다는 것만 알아도 반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시작이 어렵다는 말은 진리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역시 새겨둘 만하다. 누군가 시작을 해야한다. 언제까지나 책상 앞의 토론으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나 시기상조론에 파묻혀 있을 것인가. 기회는 누군가 시작할 때, 바로 그때가 적당한 시기인 것이다.(256p)
강민주는 백승하를 납치한다. 그는 인기 절정의 영화배우이다. 그는 뭇 여인의 우상이기도 하다. 여성을 향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고 소문난 애처가인 그가 강민주의 제 1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가장 적절한 공격 대상이다. 그는, 남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자체를 은폐하면서, 이미 남성이라는 사실 자체로 그 폭력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자보다 더욱 교활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후자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반항을 유발시키지만 그는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게 하고, 여성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이 단지 남성을 잘못 택했기 때문일 뿐이라는 환상을 갖게 한다. 백승하라는 인간을 굴복․변화시키고 그에 대해서 세상이 갖고 있는 환상을 깨버릴 수만 있다면, 남성에 대한 복수와 아울러 여성이 남성에 대하여 갖고 있는 환상을 깨버릴 수 있는 이중의 효과를 낳을 수 있다.(340-341p)
ㅡ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中,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