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 中, 민음사
2019
내 순례의 목적은 늘 다른 순례자다.(191p)
이 구절은 반복적으로 등장함.
어떤 모델이 거식증으로 사망했다. 그러자 당국은 지나치게 마른 모델들이 런웨이에 오르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테러리스트에 관한 기사도 있었다. 테러가 또다시 실패했다는 내용이었다. TNT 폭탄과 기폭 장치가 어느 아파트에서 발견되었다. 방향감각을 잃은 고래들이 해변으로 몰려와서 떼죽음을 당했다는 기사도 읽었다. 경찰이 인터넷을 통해 소아 성애자들의 연결 고리를 추적하고 있다는 기사. 내일은 더 추워질 거라는 일기예보. 그리고 이동성은 현실이 된다는 광고.
이 신문은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조작되거나 거짓투성이일 터였다. 그녀가 읽은 모든 문장이 하나같이 견딜 수 없고, 가슴이 아리게 하다니.(377p)
“인생이란 우리가 오래전에 이미 통제 능력을 상실한 혐오스러운 습관 같은 거야. 담배 끊어 본 적 있어?”라는 문장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 그녀는 담배를 끊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녹록지 않은 경험이었다.(421p)
“지속적인 고통과 점진적인 마비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는 그런 상태를 한번 상상해 봐. 그래도 뭐, 어떻게든 고통을 참을 수는 있었을 거야.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날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지금 겪는 이 고통 말고 다른 방법은 없으며 앞으로도 이 고통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없으리라는 생각, 매 시각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며 그렇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생각, 열 개의 통증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환각으로 지어진 지옥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지옥의 여정 속에서 인도해 주는 안내자가 한 사람도 없고 손잡아 줄 이 또한 아무도 없다는 생각, 아무도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 건 실은 별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 어떤 형벌도 포상도 없으리라는 그런 생각 말이야”(437-438p)
이 책에 가장 좋았던 구절. 인생이 이런 것이겠지.
한 남자가 대륙을 오가는 대형 비행기 안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다 깨어난다. 그리고 얼굴을 창문에 갖다 댄다. 밑으로 광활한 검은 대륙이 보인다. 그 컴컴한 심연 속에서 군데군데 희미한 빛줄기가 뻗어 나온다. 거기에 대도시들이 있다. 화면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도 덕분에 그는 여기가 러시아 대륙의 시베리아 중부 어디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내는 담요를 끌어 올려 덮고는 다시 잠이 든다.
아래쪽, 흑점 가운데 하나에서 또 한 명의 사내가 나무로 지은 집에서 걸어 나온다. 그리고 내일 날씨를 확인화기 위해 두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만약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일직선의 광선을 하늘을 향해 끌어당긴다고 가정해 보면, 몇 초 동안 비행기 안에 있는 사내와 지상에 서 있는 사내, 이 두 사람은 그 반경의 일직선상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찰나의 시간 동안 그들의 눈빛 또한 동일선상에 놓일 것이며, 그들의 동공도 직선으로 서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내는 서로 수직적으로 이웃이다. 1만 1000미터란 결국 무엇인가. 그것은 10킬로미터보다 조금 더 먼 거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사내의 마을에서 인근 마을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운 수치다. 또한 그것은 대도시에서 서로 떨어져 있는 거주 단지들 사이의 거리보다도 훨씬 가까운 수치이기도 하다.(495-496p)
거리감각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었다.
“어쩌면 과거를 보는 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뒤로 돌리는 거죠. 마치 파논티콘처럼. 아니면 친애하는 여러분, 과거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겁니다. 단지 다른 차원으로 이주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저 우리의 시각과 관점을 바꾸기만 하면 될지도 모릅니다. 모든 걸 곁눈질로 보는 거죠. 미래나 과거가 무한하고 끝없는 것이라면 실제로 ‘언젠가’라는 시점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시간의 다양한 순간이 마치 홑이불처럼 공간 속에 매달려 있거니, 아니면 여러 개의 화면 속에 특정한 순간이 동시에 투영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움직일 수 없는 순간, 거대한 메타-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저 깡충깡충 뛰어다닐 뿐입니다.”
(...)
“실제로는 그 어떤 움직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논의 역설에 등장하는 거북이처럼, 우리는 어느 곳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입니다. 그저 순간의 내부를 간신히 맴돌고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애초에 목적지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공간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무한대에서 똑같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어딘가’라는 표현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장소도, 어떤 날도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576-577p)
이건 다시 읽어봐도 아리송하다. 무슨 말이죠?
교수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피의 강물이 흘러넘쳐 붉은 대양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바닷물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범람했다. 먼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유럽의 한 평원을 집어삼켰다. 도시와 다리, 그리고 그의 조상들이 대대손손 어렵게 지은 댐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바다는 갈대숲에 감춰져 있던 그들의 집 문턱까지 침범했고, 과감하게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돌바닥에 깔린 붉은 양탄자와 토요일마다 문질러 닦던 부엌의 나무 바닥을 휩쓸더니, 마지막으로 벽난로의 불을 꺼뜨리고 찬장과 테이블까지 덮쳤다. 그다음으로는 기차역과 공항, 언젠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수가 고향을 떠난 바로 그곳을 집어삼켜 버렸다. 또한 그가 여행을 다녔던 도시들과 거리들이 전부 물에 잠겼다. 그가 임대해서 지내던 방, 싸구려 호텔, 끼니를 해결하던 음식점도 모조리 사라졌다. 붉게 빛나는 그 수면은 그가 너무도 사랑하던 도서관의 첫 번째 서가를 공격했다. 책장들이 물에 젖어 퉁퉁 불었다. 표지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검붉은 혓바닥이 문자들을 핥았고 검게 인쇄된 활자를 지워 없앴다. 자녀들이 졸업장을 받은 학교의 계단과 마룻바닥도, 교수 임명을 받기 위해 자랑스럽게 달려가던 도로도 전부 붉은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다. 그와 카렌이 함께 누워 늙고 노쇠한 육신을 처음으로 결합했던 침대 시트도 붉게 물들었다. 붉은빛의 그 끈끈한 점성 액체는 그가 자신의 신용 카드와 비행기 표, 손자들의 사진을 넣어 둔 지갑의 칸막이도 영원히 봉인해 버렸다. 물살은 기차역과 철로, 공항과 활주로를 모조리 덮쳤고, 이제는 그 어떤 비행기도, 그 어떤 기차도 거기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해수면은 끈질기게 상승했고, 말과 개념과 추억을 모두 집어 삼켰다. 가로등 불빛이 모조리 꺼지고 전구들이 터져 버렸다. 전선은 끊어지고 네트워크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죽은 거미줄이 되어 버렸으며 전화기는 먹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느리고 무한한 대양이 마침내 병원 근처까지 왔다.(587-588P)
ㅡ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 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