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원도, <경찰관속으로> 中, 이후진프레스

mediokrity 2020. 1. 30. 21:56

2020/1

 

 

언니, 사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흔히 누군가 뛰어내리면 ‘쿵’하는 소리가 들리겠거니 상상하지만 실제론 아니야. 10대 중반을 막 넘어선 학생 한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어. 당시 근처에 있던 아파트 경비원은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고 진술했어. 한 사람이 죽기로 결심하고 뛰어내리면 폭발하는 소리가나. 마치 생의 마지막까지 산산이 부숴버리려는 것처럼.(106-107p)

 

 

이렇다보니 나도 현장에 가면 참 답답해. 피해자를 위해 해주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은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해자를 향해 “선생님, 진정하세요.”가 끝이야. 어느 순간엔 나도 비겁함이란 가면을 쓴 채 피해자를 외면해버리고 돌아가서 대충 서류만 작성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피해자의 외침이, 눈물이 내 발목을 잡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애써 포장해. 나는 정의로움보다 비겁함을 먼저 배운 대한민국 경찰관이니까.

경찰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눈은 너무도 많으며, 일이 터졌을 떄 경찰 조직조차 현장 경찰관을 보호해주지 않아. 오히려 그 일을 반면교사 삼아 각종 매뉴얼만 만들어 하달하기 바쁘지. 그렇게 경찰관들은 비겁함을 배워. 무력감이 온몸을 잡아먹는 현장을 보며, 정신적 스트레스에 일상이 침몰되어도 심리 치료조차 받지 못해 혼자 끙끙 앓는 동료를 보며, 차곡차곡 배워 온 비겁함은 현장에서 ‘나만 아니면 돼’식의 일처리로 나타나. 그러한 현장에 환멸을 느낀 수많은 경찰관은 승진으로, 학연·혈연·지연·흡연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현장을 벗어나고 있어. 현장에 적합한 유능함을 갖춘 사람일수록 현장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곤란한 상황에 처할 일이 없는’안전한 부서에 자리를 잡고 나오지 않아. 그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야. 현실의 답답함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163-164p)

 

 

한 명의 인생을 망치는 건 한 사람으로 족하지만, 그 망가진 인생을 구원하는 건 수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한 일이야.(178p)

 

 

ㅡ 원도, <경찰관속으로> 中, 이후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