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서은국, <행복의 기원> 中, 21세기북스
2020/5/7
행복의 HOW를 다루는 책을 무시하나 WHY를 안다고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닐 것이다. 행복을 진화론에 따라 설명했다는 게 그나마 이 책의 유일한 미덕이다. 잘 썼다는 말은 아니고.
드는 사례나 비유가 진짜 별로였다. 잘못된 비유나 예는 오히려 주장을 모호하게 만들고 헷갈리게 한다. 비유나 예시는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의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대로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전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16p)
시간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생각보다 빨리 지운다.
감정의 또 다른 특성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
극단적인 경험을 한 번 겪으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그 후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110p)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들을 보며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111-113p)
(...)
이 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적응’이라는 녀석이 지목되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질문이 남아 있다. 적응이라는 범인은 잡았는데, 그의 정확한 범행 동기(?)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왜 그토록 빨리 소멸될까?
(...)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은, 이런 생존 행위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살기 위해서는 내일 또 사냥을 해야 한다.
사냥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기기 위한 필요조건이 있다. 오늘 고기를 씹으며 느낀 쾌감이 곧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쾌감 수준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런 ‘초기화reset’과정이 있어야만 그 쾌감을 유발시킨 그 무엇(고기)을 다시 찾는다.(121-122p)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긍정성 또한 행복한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증상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어느 정도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난 기질이다.(137p)
한 조건에서는 참가자들이 언급한 일(여행)을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즐거운 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조건에서는 남들도 마찬가지로 여행은 아주 즐거운 경험이라 생각한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 참가자들에게 그 여행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다시 한 번 평가하도록 했다.
예상했던 문화 차가 나타났다. 미국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여행에 대한 원래의 자기 느낌을 고수했다. “내가 즐거웠다는데, 무슨 상관.”
반면 한국 참가자들은 흔들렸다. 자기 경험이 남들이 볼 때는 별게 아니라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여행이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즐겁지 않다고 느꼈다. “나만 좋다고?” 왠지 뭔가 착각한 것 같아 뻘쭘해진다. 과도한 타인 의식에서 나오는 혼란이다.(170-171p)
ㅡ 서은국, <행복의 기원> 中,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