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에리카 밀러, <임신중지> 中, arte

mediokrity 2020. 7. 15. 22:11

2020/7/15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이현석 작가의 작품으로 알게 된 책.

 

 

세계 66개 국가의 전체 인구 중 25퍼센트는 임신중지가 법적으로 완전히 금지되거나 모체의 생명이 위험할 때만 허용되는 조건 아래 살아간다. 이런 국가 대부분은 남반구·중앙아시아·동아시아에 있다. 물론 여성들은 합법인지 불법인지와 상관없이 임신중지를 한다. 더욱이 확률로 따지면 임신중지가 합법인 나라보다 법적 제약이 있는 나라에서 임신중지가 더 많이 이뤄진다. 법은 임신중지를 막지 못하며 그 안전성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임신중지로 해마다 여성 약 500만 명이 입원하고 4만 7000명이 사망하는데, 대부분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12-13p)

 

 

내가 이 장에서 역사화한 임신중지의 애매성이란, 임신중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불완전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으로 여겨졌음을 나타낸다. 이 시대 임신중지 정치의 심장부에 위치하는 이 속성을 두고 학자들은, 임신중지에 낙인찍기 혹은 임신중지를 ‘끔찍한 일로 만들기’라 부른다. 임신중지 법이 자유화되었더라도, 임신중지가 여성에게 유해하고, 끔찍하며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조치라는 상식은 팽배하다.(85p)

 

 

1980년대 중반, 반임신중지 운동은 태아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더욱 숨긴 채,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염려하는 듯이 활동했다. 그때부터 태아중심적 애통함이 반임신중지 운동 진영을 넘어 임신중지에 대한 대중적 논의를 지배했고 다른 해석의 여지를 막았다. 태아중심적 애통함은 임신중지ㅡ자율적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여성이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영원히 애도하게 만드는 행위ㅡ의 해로움에 관한 반임신중지 주장을 강력히 수호하는 규범적 전제를 주관한다.

(...)

애통함은 행복과 나란히 작동해, 임신에 관한 좋고 나쁜 선택을 만들어 낸다. 이 시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임신중지 선택의 감정경제는 존재와 부재의 관계로 구조화된다. 즉 아이를 갖는 것은 규범적이고, 여성에게 행복을 약속하는 일이며, 그 궤도에서 일탈하는 것은 상실·애통함·후회·갈망으로 얼룩지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 감정경제는 모성 욕망을 자연화해 읽음으로써 발생하며, 그런 읽기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또한 임신한 여성을 이미 어머니로 만들며, 다른 여성들 또한 어머니, 대기 중인 어머니, 결코 가질 리 없는 아이를 갈망하는 어머니로 만들어 낸다. 이 서사가 임신을 그려 내는 유일한 방법인 한, 임신중지는 자연·질서·윤리·행복·올바름을 거스르며 비자연·파괴·혼돈·트라우마의 편에 서게 된다.(169-170p)

 

 

태아가 임신한 여성에게 행복의 대상으로 위치 지어질 때, 태아는 임신중지에 따른 ‘애통함’의 대상이 되며, 임신중지에는 애통함이라는 약속이 따른다. 애통함은 임신중지에 관한 이야기를 지배한다. 임신중지에 대한 다양하고 심지어 상반돼 보이는 관점에서도 말이다. 애통함은, 여성이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죽음을 영원히 애도한다는 식으로 가장 자주 묘사된다. 태아중심적 애통함은 임신한 여성을 이미 자신의 자궁에 자율적인 ‘아이’를 품은 어머니로 만드는 한편, 임신중지가 여성에게 도덕적으로 문제 있고 해롭다고 이야기한다.

행복과 애통함은 아이의 존재 혹은 부재로 구조화된 감정경제를 형성한다. 이 감정경제에서, 여성에게는 임신과 관련해 좋은 선택 혹은 나쁜 선택이 있고, 여성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모성으로 향한다. 그러나 임신중지의 감정경제는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과 그다지 연관이 없다. 실제로 가장 흔히 보고되는 감정은 안도이며, 심각하고 오래가는 애통함은 드문 경험이다.

(...)

임신중지에 대한 ‘침묵’과 ‘비밀에 부추기’는 수치와 낙인이 내면화되었음을 나타낸다. 임신중지를 숨기는 여성이 비율이 높다는 것은, 임신중지를 겪어 본 적 없는, 더군다나 임신중지는 고사하고 임신도 하지 않을 남성들이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장본인이 된다는 뜻이다. (...) 더 이상 임신을 지속하길 원치 않는 여성의 시각으로 임신중지를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임신중지는 원치 않은 임신의 중지라기보다는, 자율적인 생명을 파괴하는 절차로 묘사될 때가 훨씬 더 많다. 물론 임신중지 절차는, (유산되지 않는다면) 자율적 인간이 되었을지 모를 배아/태아의 발달을 멈추게 하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임신중지를 바라본다는 게 반드시 반임신중지 관점을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임신중지를 배아나 태아의 생명을 파괴하는 일로만 본다면, 임신한 여성보다는 태아에게 초점이 갈 것이다. 임신이라는 게 늘 의지나 의도에 따라 이뤄지진 않는다. 원치 않은 임신과 계획하지 않은 임신은 여성의 재생산 적 삶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임신중지는 의도치 않게 임신한 여성이 그 상황을 타개할 수단으로서 유일하게 보장받은 것이다. 임신 혹은 임신중지의 초점을 태아에게 둘 때, 태아는 자율적인 존재로 탈바꿈하며, 임신한 여성은 이미 어머니로 간주된다. 이런 도식에서 말하는 임신중지란, 가장 좋게 봐서 불쾌하지만 필요한 일이고, 가장 나쁘게 보자면 도덕적으로 비난받은 만한 위험한 일이다.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인심중지를 겪은 여성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길 거부한 ‘이기적인 어머니’. 임신중지에 어떤 일이 따르는지, 그 심리적·감정적 후유증이 어떠한지도 모른 채 아이를 죽인 ‘불운하고 취약한 희생자’. 이와 반대로 여성이 임신중지에 접근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들은, 여성에게 임신중지를 ‘강요하는’ 경제적·사회적 상황을 강조한다.(245-247p)

 

 

선택으로 환원된 정치는 근본적으로 개별화돼 있다. 그런 정치가 참조하기도 하고 생산하기도 하는 자율적 주체란 허구일 뿐이다.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자발적인 선택의 주체는 철저하게 여성화된 가사노동과 재생산노동에 완전히 의존하며, 이로써 유지된다. ‘여성이 그런 노동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 선택했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라는 가정을 되풀이하는 와중에 경제적·정치적·사회경제적 맥락은 제거된다. 임신중지에 자유가 존재하려면, 자율적인(선택하는) 주체에 기반한 자유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에 살고 있다. 따라서 웬디 브라운이 주장하듯 “개별적 자유라는 건 없다. (···) 인간에게 자유란 결국, 언제나 타인과 함께 세계를 만드는 기획이다.” 오늘날 선택의 주체는, 이를테면 여성이 무한한 선택지를 가졌고, 행복의 대상인 아이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모성을 선택한다고 하는 식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여기서 그 주체는 여성의 재생산적 신체라는 차원에서, 선택에 깃든 긴장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균형은 깨지기 쉽다. ‘자율성’과 ‘선택’이 있는 곳에 ‘제약조건’과 ‘의존’이 있다. 개인의 선택은 정치적이다.

(...)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한다고 해서 임신중지에 접근하는 데 지역·비용의 장벽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임신중지가 문화적으로 합당하거나 정상적인 선택으로 여겨지는 것도 아니다. 임신중지 법이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근원은 아니다. 법은 젠더·임신·모성 규범을 반영하고 강화하는 장치일 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여러 사법 관할구역에서 임신중지는 비범죄화됐다. 그러나 방금 말한 규범은 법보다 오래 살아 남는다. 임신중지의 감정경제는 법의 규제가 필요 없을 만큼, 스스로 행동을 규제하는 자기감시적 주체를 만들어 낸다.(250-251p)

 

 

나는 임신중지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했다.

내가 알기로, 나는 세상에 용서를 구하면서

평생 땅을 기어 다녀야 할 사람이다. 두 번의

임신중지야말로 내가 내린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외치면서 고개를 숙여야 하고,

그 결정을 날마다 생각해야 하고, 스스로 비정한

영아살해자라는 사실에 극심한 고통을 느껴

지독한 우울에 빠져야 한다. 집어치우라. 나는

두 번의 결정 중 무엇에도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고,

미안해할 일은 없다.

 

임신중지를 미안해하지 않겠다는 서사는, 이 책에서 살펴본(미안해하는) 임신중지 서사의 규범적 힘을 반증하는 명료한 대항담론이다. 아울러 이는, 임신중지의 문화적 의미를 꽉 쥐고 있던 헤게모니에, 우리가 바랄 만한 균열이 생겼음을 알려 준다.(252-253p)

 

 

 

ㅡ 에리카 밀러, <임신중지> 中,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