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中, 민음사

mediokrity 2015. 11. 11. 14:34

2015/11/10

 

 

실험적인 언어와 이미지를 제공하는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이 많은 데 동의하지 못하겠다. 작품에 등장하는 그 많은 사진과 타이포그래피가 그렇게 효과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없어도 별 상관없어 보인다. 장점이라면 그림과 이것저것 다 빼면 300페이지가 조금 넘을 소설인데 다 합쳐지니 489p나 되기 때문에 내가 뭔가 대단한 작품을 읽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이미지와 글자 배열 등은 독서를 산만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게 의도였다면 제대로 적중했다. 소설 속에서 오스카의 재기 넘치는 모습을 보고 웃음 짓긴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재기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비교는 아니지만, 소설 전체가 재기를 뿜어내는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사랑한다.’라는 말을 인상적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이 소설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이라는 건 언제나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한다. 지나고 나서 그게 마지막이었구나.’라고 실감할 뿐이다. 사랑의 감정이 생기고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망설이지 말고 표현하자. 내일로 미루지 말자. 한 행동에 대한 과거는 어떻게든 후회로 잊히지만, 하지 못했던 행동은 회한이 되어 평생 따라다닐 테니.

 

 

더 이상 네 앞에서 강한 척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자, 난 한없이 약해졌어. 바닥에 쓰러졌단다. 그곳이 내게 맞는 곳이었어.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어. 손이 부서지길 바랐지만, 너무 아파서 멈추었지.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손 하나 부서뜨리지도 못하다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지.

화장실에 가야 했어. 일어나고 싶지 않았단다. 내 배설물 속에 널브러져 있고 싶었어. 나는 그래야 마땅해. 내 오물 속에서 뒹굴고 싶었어. 하지만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단다. 그게 바로 나야.(321p)

 

 

나는 그럴 때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할지 모조리 생각해 보았다. 태어난 이상 천 분의 일 초 후든, 며칠 후든, 몇 달 후든, 76.5년 후든 누구나 죽어야 한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 말은 우리 삶이 고층 빌딩과 같다는 의미이다. 연기가 번져오는 속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불길에 휩싸여 있기는 다 마찬가지이고, 우리는 모두 그 안에 갇혀 있다.(340p)

 

 

사랑한다.(439p)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