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한정원, <시와 산책> 中, 시간의 흐름

mediokrity 2020. 11. 11. 09:00

2020/11/8

 

 

 

노인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뼈가 비워지는 탓이겠지만,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단념해서 버려지는 무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노인의 등을 가만히 보며, 나는 그 반대편 가슴 안에 머무는 색(色)에 대해 생각했다.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색이라면, 무엇이든 마음에 들이고 보내며 일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도 색이 있을 테니까. 어느 물감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찬연한 색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이제 색이 바랬다고, 혹은 아예 색을 잃었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늙음일 것이다.

대개 서른, 마흔, 예순 같은 나이에 큰 의미를 두고 ‘꺾인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삶을 꺾이게 하는 것은 그보다는 ‘사건(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나쁜 사건ㅡ개인의 불행이나 세계의 비극ㅡ을 겪는 순간이라고. 그래서일까. 나는 덜 늙고서도 늙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보내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몸의 관절이 오래 쓰려 닳듯, 마음도 닳는다. 그러니 ‘100세 인생’은 무참한 말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100년 동안이나 쓸 마음이 없다.(67p)

 

 

 

ㅡ 한정원, <시와 산책> 中, 시간의 흐름